(이 글은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870년 미국. 제퍼슨 카일 키드 대위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주민들을 모아놓고 신문에 나오는 최신 뉴스를 들려준다. 그는 포악한 악당 팔리에게 붙잡혀 '이레스 카운티'라는 곳에 끌려갔다. 팔리는 마을의 독재자다. 팔리 일당이 키드 대위에게 요구한 것은 광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지역신문 '이레스 저널'을 들려주라는 것. 이레스 저널은 들소를 잔인하게 사냥하고 인디언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팔리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도배됐다. 하지만 키드 대위에게 그것은 '뉴스'가 아니었다. 키드 대위는 이레스 저널 대신 수만 리 떨어진 펜실베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광산 사고 뉴스가 실린 다른 신문을 읽기 시작한다. 사고를 당한 이들이 운명에 맞서는 스토리에 주민들은 열광한다. 팔리 일당은 키드 대위를 저지했고, 주민들이 이에 항의해 소동이 일어난다. 팔리 일당은 모임을 해산시키고 키드 대위를 해치려 든다.
언론이 바라볼 대상은 이 영화에서처럼 권력이 아니라 인민이다.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뉴스만 다루라고 압박할 때 비극은 시작된다. 대표적인 게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언론 통제다. 정권 찬양 일색의 '땡전뉴스'를 국민은 외면했다. 공적 언론은 '이레스 저널'이나 마찬가지였다. 언론이 신뢰받지 못할 때 일반인들은 추측과 비공식 정보에 의존하게 되고, '유언비어'가 판치게 된다고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이효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말했다. 전두환이라는 빌런이 권력을 잡을 때가 그랬다.
언론 환경은 변하지만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존재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부자와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게 당연한 것처럼, 권력을 많이 가질수록 더 큰 감시와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종부세가 싫으면 집을 팔고 떠나라"는 말이 맞다면, "감시와 비판이 싫으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라는 말도 참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권력은 그런 감시와 비판이 못마땅한가 보다. 막중한 의회권력에 친문의 지지까지 등에 업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국민이 열망하는 언론개혁을 완수해나가겠다"고 했다. 김의겸 의원은 정부가 돈을 대는 공영 포털을 제안하고 나섰다. 여당 의원들은 포털 알고리즘을 손보려 하고, 언론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적용 대상으로 추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이같은 움직임에서 팔리 일당의 폭력을 본다. '찬란한 K방역의 성과와 경제 성공담'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으면서 친정부 인사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지면을 할애한 언론이 못마땅한 게 그 배경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악당 팔리와 같다. 5·18 정신을 독점하겠다는 이들이 전두환도 계승하려 하는 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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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영웅담과 미담으로만 도배하는 언론은 땡전뉴스의 사례처럼 독자가 원하지 않는다. 사실확인을 소홀히 한 보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언론은 정부가 나설 것도 없이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 외신을 자유롭게 접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로 사실 확인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더욱 그렇다.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칭호조차 사법부가 추인해줄 정도로 인신공격성 언론비판이 일상이고, 언론끼리 서로가 보도한 내용을 팩트체크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다.
영화 '뉴스오브더월드'의 배경은 건국 초기 미국이다. 영화가 아닌 실제 언론은 어땠을까. 프랑스 사람 알렉시 드 토크빌이 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는 당시 언론 상황이 나와 있다. 토크빌이 아메리카에 처음 도착해서 읽은 신문에는 현직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을 파렴치한 도박사로 묘사하며 온갖 저주를 퍼붓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토크빌은 이같은 언론의 횡포까지도 용인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의 방종을 바로잡겠다고 시작한 행위의 종점은 독재자의 발 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점보다 그것이 막아주는 해악 때문'이다. 새로운 발명품이었던 미국식 공화정이 200년 넘게 번영하고, 미국에 아직까지 독재자로 불릴 정치 지도자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언론의 자유가 보호된 덕분이다. 특정 정파가 행정과 입법, 사법권을 장악하고 언론까지 마음대로 했을 때 인민이 행복한 적은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