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ESG를 옹호하는 이유

[투데이 窓]ESG를 옹호하는 이유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1.08.31 02:03
양지훈 변호사
양지훈 변호사

19세기 영국의 아동노동은 실로 잔인한 것이었다. 아동들은 좁은 굴뚝청소에 광범위하게 이용됐는데 작은 체구로 굴뚝을 드나들기가 쉽고 무엇보다 임금이 성인의 10%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루 15시간 노동에 식사시간은 10분이었고 굴뚝에서 잠들어 질식하거나 타죽는 아이도 많았다. 탄광에서도 작은 아이들이 비좁은 갱도를 기어다니며 일을 했는데 놀랍게도 탄광의 고용연령은 4세부터였다. 비단 탄광이나 굴뚝청소 외에 당시 주요 산업인 면직산업에도 35% 정도의 인력이 아동으로 채워졌다. 19세기 영국 자본가 입장에서 노동력으로서 아동은 비용효율적인 생산수단이었지만 결국 1833년 공장법에 의해 규제되기 시작한다. 공장법이 9세 이하 아동의 노동을 전면금지하고 청소년 노동을 제한했기 때문이다.(권홍우, 2017년 8월29일자 서울신문 '음울한 자본주의, 1833년 공장법' 중.)

당시 공장법이 도입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자본계급 내 입장 차이 역시 한몫했다. 여전히 아동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던 중소공장주와 달리 기계를 사용해 노동력 의존도가 낮은 대공장주들이 공장법에 찬성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추가 노동력이 필요하던 북부 자본가가 노예노동을 옹호한 남부 농장주와 반대 입장에 선 역사를 떠올려볼 수 있다.

아동과 노예의 자리에 지구나 환경을 대입하면 최근 부각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의 단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세계기상기구(WMO) 데이터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100년 넘게 지구 평균온도가 1.1도 오른 데 반해 2011년부터 4년간 0.2도가 올랐을 정도다. 19세기 아동착취만큼 우리는 지구를 착취하는 셈인데 결국 도래할 파국은 어떤 것일까. 여러 예측 시나리오가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인류가 생존을 고민해야 할 정도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본은 이제 시장이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지구와 환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SG 영역 중 환경(Environment)이 특히 강조되는 이유다. 모든 것이 망가진 이 땅에서 이윤이란 무슨 소용인가.

자산규모 162조엔(약 1718조5000억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기금을 운용하는 일본 후생연금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 미즈노 히로미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보편적인 소유주로서 초과수익을 내는 데 관심이 없다. 시스템 전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시스템에 환경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많은 이가 ESG 투자는 허상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이와 같은 진술을 허위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저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금융자본이 도대체 더 많은 이익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후생연금펀드는 그 엄청난 자산 때문에 모든 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소유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 시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결국 시장 자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연금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이다. ESG경영을 선언했다고 보이는 래리 핑크의 블랙록과 같은 거대 자산운용사도 비슷한 위치라고 봐야 한다.

말하자면 이들 연기금과 블랙록이 19세기 공장법 도입에 찬성한 대자본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자본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후생연금펀드 역시 간접투자한 자산운용사들이 처음엔 ESG 투자 기준에 저항했지만 결국 이들을 견인해낸 사실에 주목하자.

ESG를 한때 마케팅이나 패션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 새로운 '자본운동'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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