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만약에 꿀벌이 사라진다면?

[광화문]만약에 꿀벌이 사라진다면?

원종태 에디터
2021.09.0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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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이 집 뒷마당에서 직접 양봉을 한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국내 최대 트렉터 기업의 수장으로서 구 회장이 누구보다 꿀벌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꿀벌이 멸종하면 4년 안에 인류도 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꿀벌은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식물의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수분(受粉)'을 해준다. 원래 지구 식물의 65%는 꽃가루 수정을 해야 번식하는데 이런 식물들은 수술과 암술이 따로 존재해 둘이 스스로 만나 열매를 맺긴 불가능하다.

꿀벌의 존재감이 빛나는 건 이 대목이다. 꿀벌이 꽃꿀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꿀벌 다리에 수술의 화분이 잔뜩 묻고, 이를 암술로 옮긴다. 그러니 꿀벌이 날아다녀야 비로소 식물이 번식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사과, 배, 참외, 호박 등 다양한 과일과 채소는 이렇게 꿀벌의 도움으로 열매가 열린다. 꿀벌이 멸종되면 지구 100대 재배 작물 중 무려 71%가 함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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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을 막 시작한 사람들은 주변 자연을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우선 꽃을 피우는 식물부터 눈에 들어온다. 꿀벌을 키워야 하니 한 해에 어떤 나무와 어떤 식물들이 어느 순서로 꽃을 피우는지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느 해에도 똑같은 봄은 없고, 똑같은 여름은 없다. 삭막한 세상에서 꿀벌을 통해 자연의 모든 것과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꿀벌을 키우는 것은 인간이 대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으며, 생명의 번식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꿀벌을 소재로 한 미국 다큐멘터리 '모어 댄 허니'는 인간들이 꿀벌을 얼마나 탐욕스럽게 이용하는지 볼 수 있다. 그들은 꿀을 얻기 위해 양봉을 하는 것이 아니다. 꿀벌의 '수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 일명 '수분 양봉'으로 돈을 번다. 미국의 거대 농장에 꽃이 필 때 꿀벌을 대량으로 풀어 수분을 최대한 많이 하게 해주고, 농장주에게 돈을 받는 식이다. 꿀을 채취하는 것보다 이 수분 양봉이 더 돈이 되니 꿀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혹사 당한다.

꿀벌 생물학자 위르겐 타우츠는 '벌꿀공장'에서 수분 양봉가들이 2월이 되면 대륙 4000km를 횡단해 플로리다에서 캘리포니아로 꿀벌들을 트럭에 싣고 이동한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에는 세계 최대 아몬드 농장들이 즐비하다. 아몬드꽃이 필 때마다 미국의 꿀벌 군락 50% 이상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여기서 수분을 끝낸 꿀벌들은 3월에는 1000km 떨어진 북쪽의 워싱턴 사과농장으로, 5월에는 2000km 동쪽에 있는 유채밭과 해바라기밭으로 옮긴다. 7월에는 펜실베니아 호박밭에서 수분을 도운 뒤 8월에 플로리다로 돌아간다. 이렇게 1년에 꿀벌들이 강제 이동 당하는 거리만 1만2000km에 달한다. 더 많은 수분을 해야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꿀벌들은 이 기간에 강제로 분봉(한 꿀벌 집단을 2개 이상으로 나누는 것)을 당하는 등 비정상적 생활을 한다. 이런 꿀벌들의 30% 이상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한 채 집단 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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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세상에서 인간의 간섭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기후 위기와 살충제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론 휴대폰 중계소도 꿀벌에게 위협적이다. 자기장을 감지해 집을 찾아가는 꿀벌들을 교란시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끝내 죽게 만든다. 그래도 구 회장처럼 꿀벌의 소중함을 이해하며 '도시 양봉'을 하는 양봉가들이 우리 주변엔 의외로 많다. 종로구와 관악구, 광진구, 강동구 등은 공영 양봉장을 운영하며,어반비즈 같은 스타트업들은 건물 옥상에서 양봉을 한다.

양봉은 도심 생태계 복원의 바로미터다. 도시에 꿀벌이 많아야 꽃의 발화율도 높아지고 열매도 많이 맺는다. 이는 또 다른 곤충들과 새들을 부르며 도시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한낱 꿀벌이 무슨 대수냐고 함부로 여겼다간 우리에게도 중국 쓰촨성의 마을들처럼 꿀벌이 모두 사라져 인간이 사과나무에 매달려 꽃가루를 묻혀줘야 하는 해괴한 장면이 벌어질 수 있다. 꿀벌이 건강해야 인간도 더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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