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과 전쟁'을 선포한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억누르기 위해 전방위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경우 경제·금융 전문가와 만남에서도, 코로나19 금융지원의 '질서있는 정상화'를 논의한 정책금융기관장과의 회동에서도 모두 가계부채를 화두로 삼았다.
고 위원장은 "대출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상황이 변해도 본인이 대출을 감당하고,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느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 가계부채 관리방안 발표 당시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확대 시행 계획을 내놓으며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돈을 빌리는' 관행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의 행보를 보면 이런 얘기가 무색해 보인다. 상환능력에 맞춰 대출을 내주는 관행 정착보다는 금융사들에게 던져준 가계대출 증가 총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말'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여기서 '총량관리의 함정'이 발생한다. 금융당국은 실수요자 보호 대책도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정작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 상환능력 만큼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고신용자들이 중·저신용자들의 보루인 2금융권으로 침투하면서 정작 서민·실수요자들이 돈을 제때 빌리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예컨대 생계자금 성격이 강한 카드론을 조이니 그보다 금리가 높은 현금서비스로 사람들이 내몰리는 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출난민'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도 대출취급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면서도 규제 강화 과정에서 대출중단이 은행 전체로 퍼질 가능성을 인정했다. 지난달 농협은행의 대출중단 사태 당시 '다른 은행들로 대출중단이 확대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말을 뒤집은 것이다.
금융당국의 경고대로 향후 금리인상 등 리스크에 노출된 사람들은 이미 대출을 받은 차주들이다. 과도하게 빚을 낸 사람들의 '질서있는 상환'에 가계부채 대책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의 철학 없는 부동산 규제에 '벼락거지'가 양산됐듯, 금융당국의 총량관리 숫자 집착은 가수요만 불러와 수많은 '대출난민'을 낳을 뿐이다. 규제가 강할수록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