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비공개'재판하라[우보세]

차라리 '비공개'재판하라[우보세]

유동주 기자
2021.11.03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30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2019.9.30/뉴스1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30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2019.9.30/뉴스1

최근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법정에서는 소위 '법관 사찰'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사찰내용을 법정에서 읽는 것에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포함돼 있어 방청객이 들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재판장은 검사도 동의하자 내용을 판사와 검사, 변호인만 서면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찰 내용은 남이 알면 안 되는 '비밀'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판사가 어느 모임에 가입했고 누구와 친하고 과거에 어떤 활동을 했다는 등의 내용으로 방청객이 듣는다고 해도 해당 판사의 '치부'가 드러나거나 할 내용도 아니었다.

방청석엔 기자 두어명 정도 있었고, 일반 방청객은 아예 없었다. 법조인들은 다분히 취재를 위해 앉아 있던 기자를 의식한 재판 진행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은 자주 벌어진다. 법정에 앉아 있는 방청객이나 기자를 의식해 재판부나 검사, 변호사가 현장에서 자기들끼리만 '은어'처럼 사람이름이나 기업명을 감추는 경우도 있다.

사건에 관련이 있어 언급은 해야 하지만 그 인물이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인 경우에 다른 표현으로 돌려 말한다. 물론 판검사와 변호사는 이미 서류로 내용을 읽었기 때문에 등장 인물, 관련 인물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 만약 방청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면 편하게 이름을 언급하며 재판을 진행했을 것이다.

법정에서 노트북이나 휴대폰 등 기록이 가능한 전자기기 사용가능 여부는 법원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재판장이 재량으로 결정한다. 특히 노트북은 법원에서 언론 취재를 위한 방청에 한해 '기자 명찰'을 목에 걸 경우엔,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관례가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개별 재판부 재량에 따라 금지가 가능하다.

제주 법원에서 열렸던 고유정 사건의 2심에선 언론의 노트북 사용이 금지됐다. 수개월에 걸친 2심 내내 모든 공판이 그랬다. 기자들은 종이 필기를 하거나 휴대폰 메모를 하는 방식으로 취재해 보도했다. 재판장이 노트북을 금지하자 녹음을 시도하다 걸리는 기자도 여러 명 있었다.

고유정 2심 재판장은 녹음을 하다 걸리는 기자들이 계속 나오자 "법정에서 나온 얘기를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보도할 필요가 있느냐. 결과와 취지만 듣고 보도하면 되는 게 아니냐"며 자신의 노트북 사용금지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건 판사 생각일 뿐이다. 고유정 입에서 나오는 말은 '토씨 하나'가 다른 의미 일 수 있고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변호사의 말, 검사의 말, 노트북을 금지시킨 판사의 말도 마찬가지다. 만약 누군가 재판장의 발언을 기억에 의존해 축약해 보도하면서 왜곡이 생긴다면 재판장은 수긍할까.

법정 주재자는 판사다. 그 안에서 판사는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 하지만 판사에게 그런 권한을 준 건 국민이다. 판사는 국민이 헌법을 통해 위임한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언론은 국민에게 판사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전달한다. 국민의 감시를 두려워하는 법조인이라면 법정에 나설 자격이 없다.

유동주 기자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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