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마음 [우보세]

꺾이지 않는 마음 [우보세]

김성휘 기자
2022.12.12 03:31

[우리가 보는 세상]

(알라이얀(카타르)=뉴스1) 이광호 기자 = 2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황희찬이 역전골을 성공시킨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2.12.3/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알라이얀(카타르)=뉴스1) 이광호 기자 = 2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황희찬이 역전골을 성공시킨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2.12.3/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니폼 상의를 벗고 포효하는 황희찬. 2022 카타르 월드컵의 명장면이다. 그 순간 등장한 검은색 활동추적장치(EPTS), 이른바 '입는 GPS'도 놀라웠지만 그가 옐로카드를 받자 국민들은 또 놀랐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옐로카드라니.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시간 관리 등을 위해 상의탈의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옐로카드를 준다.

이 '상탈 금지'에는 더 깊은 스토리가 있다. 손흥민·황희찬이 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리버풀 클럽에는 1990년대 로비 파울러라는 전설적 선수가 뛰었다. EPL 통산 162골을 넣었을 정도로 유명한 득점기계였다. 그는 1997년 뜻밖에 2000스위스프랑, 현재 환율로 약 28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파울러는 그해 3월 유럽 리그의 한 경기에서 여지없이 득점했는데 이날따라 상의를 들어올려 그 안에 입은 셔츠를 드러냈다. 멀리서 보면 CK, 유명 브랜드 '캘빈 클라인' 같지만 사실은 달랐다. CK 위아래 깨알같이 새긴 글귀 전체는 '1995년 9월이후 500명의 리버풀 부두노동자(Dockers)가 해고됐다'는 것이다. CK는 부두노동자를 말하는 '도커스'의 중간 두 글자였다.

리버풀 노동자 이슈를 셔츠에 적고 1997년 3월20일 골 세리머니 때 보여준 파울러 선수./사진=온라인DB
리버풀 노동자 이슈를 셔츠에 적고 1997년 3월20일 골 세리머니 때 보여준 파울러 선수./사진=온라인DB

유럽축구연맹(UEFA)은 "경기장 안에서 어떤 정치적 행위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부두 노동자들의 사정을 알아 달라는 파울러의 세리머니는 정치행위로 간주됐다. 그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일부 그를 응원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탁민혁·김윤진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2019)에 자세히 실려있다. 월드컵의 규정 또한 명분은 시간관리지만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금지한 것 아닐까.

반대로 월드컵이 과감히 깨부순 금기도 있다. 프랑스 태생 스테파니 프라파르 심판은 92년의 월드컵 사상 처음 본선 경기 여성 주심으로 나섰다. 코스타리카와 독일의 E조 조별리그 3차전이었다. 프라파르는 이미 남자 축구대회 심판을 본 적도 있는 독보적 여성심판이다. 주최국 카타르의 여성차별과 인권 문제는 비판 받았지만 여성 주심의 존재는 분명 한 걸음 나간 것이다.

사상 첫 중동 월드컵은 '생각의 금기'도 깼다. 중동은 너무 덥고 인프라도 열악해 월드컵을 치를 수 없을 거란 시선 말이다. 아시아 팀은 약체라는 고정관념을 깨듯 한국·일본·호주는 동시에 16강에 진출했다. 독일, 벨기에 등 '강호'들이 일찍 짐을 쌌고 모로코가 '아프리카 돌풍'으로 12일 현재 4강에 진출한 것도 모두 금기를 깬 면이 있다.

금기까지는 아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가 더 있다. 축구경기에 국가는 물론 개개인의 성패까지 투사하는 과몰입 말이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지만 월드컵은 엄밀히 국가 대항전도, 대리전쟁도 아니다. 대표팀이 졌다고 마치 나와 대한민국이 실패한 것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성과가 좋지않은 일부 선수를 희생양 삼아 비난을 쏟아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월드컵을 보며 기뻐하고 낙심도 했다. 무엇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을 확인했다. 모든 금기 앞에 이 마음을 가져보자. 미친듯이 응원하지 않으면 어떤가. 열광은 환영, 동시에 좌절금지다.

김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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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휘 기자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유니콘팩토리) 김성휘입니다. 국회/정당/청와대를 담당했고(정치부) 소비재기업(산업부), 미국 등 주요증시/지정학/국제질서 이슈를(국제부) 다뤘습니다. EU와 EC(유럽연합 집행위),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등을 경험했습니다. 벤처스타트업씬 전반, 엔젤투자, 기후테크 등 신기술 분야를 취재합니다. 모든 창업가, 기업가 여러분의 도전과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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