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이리 운하 200주년

[김화진칼럼] 이리 운하 200주년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4.10.04 19:02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미국의 무역과 경제를 떠받치는 두 개의 국제운하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다. 그런데 미국이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이전 미국의 경제와 금융에 혈맥 역할을 했던 운하는 뉴욕주에 있는 이리(Erie) 운하다. 제6대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때인 1825년 10월에 개통되었다. 나이아가라폭포가 있는 버펄로와 지금 뉴욕주의 주도인 올바니를 연결한다. 배수량 75톤 선박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당시 철도가 있었지만 애팔래치아산맥이 큰 장애물이었다. 이리 운하는 운송 시간을 절반으로, 더 중요한 것은 운송비용을 1/10로 낮추었다.

허드슨강과 버펄로 유역의 고도 차이가 170m 정도나 되어서 운하 곳곳에 로크가 설치되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관광지다. 나이아가라 인근에는 5단 로크도 있다. 인구 2만 정도인 그곳 마을 이름을 아예 록포트(Lockport)로 지었다. 원래 소수의 퀘이커교도들이 살던 곳인데 공사를 시작하면서 타운으로 조성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주로 정착했다. 정부에서는 관광지로 더 육성하려고 애쓰고 있다. 현재 GM 공장이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리 운하는 아직 건재하다. 지금 보면 마치 작은 개울 같은 곳들이 대부분인데 당시에는 역할이 컸다. 로체스터에 있는 한 로크에는 구형 예선(터그보트)도 한 척 정박되어 있다. 총연장 584km, 로크 72개(지금은 35개)로 초기 공사비가 700만 달러 견적이 나왔다. 뉴욕주 정부가 공사비를 채권발행으로 조달하기로 했고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이 채권을 인수했다. 최대 6% 이자가 붙는 공채가 발행되었다. 미국 최초의 지방채다. 1803년 올바니에 설립되었던 뉴욕주은행이 주관했다. 이 새로운 금융 방법이 성공해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사업이 공채발행을 통한 금융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채권에는 프리미엄도 형성되었다. 뉴욕주 바깥에 있는 투자자들과 소수지만 유럽 투자자들도 공채를 인수했다. 뉴욕에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한 은행이 1820년에 263,000달러를 투자해 공채의 30%를 보유했다. 1829년에 채권의 총액이 790만 달러에 달했다. 통행료는 1824년부터 1882년까지 1억 2천만 달러가 징수되었다. 1855년에 33,000척 통행의 기록을 세웠다. 운하에서 25마일 거리 내에 있는 모든 토지에 재산세도 부과했다. 개통 첫 해 수입이 100만 달러여서 운영과 금융에 문제가 없었다.

그전에는 뉴욕 항구에 도착한 물자가 중부의 시카고로 가기 위해서는 허드슨강을 따라 올바니까지 올라간 다음 거기서부터 철도나 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농산물과 광물이다. 올바니부터 오대호까지 운하가 필요했던 이유다. 오대호가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세인트로렌스강은 오대호 인근에서 겨울에 잘 얼어붙는다. 이리 운하는 시카고 부근에서 미시시피강과도 연결된다. 뉴욕과 중부지방이 미국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리 운하는 중부권 경제를 유럽으로까지 이어주었고 그 효과는 다시 뉴욕과 미국 전역의 번성으로 이어졌다. 캐나다 인구의 반 이상이 오대호 유역에 살기 때문에 캐나다 경제에도 도움이 되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9세기 내내 운하와 철도사업의 자금을 제공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이리 운하 프로젝트에 힘입어 월스트리트는 19세기 말 이후 미국 금융과 자본시장의 대명사가 되면서 런던의 시티(City)에 경쟁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리 운하는 내년에 20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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