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사견(思見)]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지난달 18일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서울 광화문 포시즌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특별 강연에서 한 인삿말이다. 그의 발언은 여러가지 함의를 갖고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은 1886년 미국 외교관 퍼시벌 로웰이 저술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un-The Land of Morning Calm)에서 비롯됐다. 당시 조선(朝鮮)은 외세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힘없는 국가였다. '고요한 아침'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조용히 사라져가는 약소국을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때와는 다르다.
윤 대사대리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혼란을 묶어서 이 말을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제가 한국에 부임한 지난 1월 이후에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한 후 매일매일 아침에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12월 3일부터 시작된 '게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며 매일같이 정치·경제·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와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사대리의 눈에는 매일 '놀라는 아침의 나라'로 보인 듯하다.
윤 대사대리는 인삿말에서 2009년 주한미국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졌고, 반미 정서가 극에 달했다. 미 대사관 직원들은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올해 그가 주한미국대사대리로 임명돼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광화문 시위현장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시위대를 보고 반미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는 만큼 중국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서는 제로섬 게임과 같다"고 했다.
그는 "아침에 놀라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에 새로운 상사(트럼프 대통령)가 생긴 후 매일 지난 밤에 워싱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묻고 확인해야 할 정도로 미국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4월 2일의 아침도 '고요'하지는 않았다. 폭풍이 몰려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을 '미국 해방의 날'로 선언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10%+a(알파)'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쳤고, 25%의 상호관세를 맞은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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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교역규모 2위국인 미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의 핵심 축인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주요 산업이 미국의 관세 정책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미국의 조치는 단순한 수출 규제 이상으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을 통째로 흔드는 변수가 됐다.
우리 기업들은 상대적 관세 역차별로 우리 제품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고, 베트남이나 인도 등에 있는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들도 리스크에 놓여 공급망을 전면 재편해야 할 상황이 됐다.
그 영향으로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수출 제품 가격은 상승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생산과 물류 구조에 영향을 미쳐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FTA 및 무역규제 대응을 강화하고, 관세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윤 대사대리는 지금이 단순한 정책 변화의 시기가 아니라, '대변혁과 대혁명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안보 전략과 무역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통상 압박이 아니라 경제전쟁이다. 미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인식은 이번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다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삼성전자 등 한국기업을 대하는 방식과 미국의 방식이 달라진다면 제로섬 게임에서 누가 승자가 될 지는 뻔하다. 이번 관세전쟁은 단기간에 일시적으로 끝날 일이 아닌 만큼 인내를 갖고 견뎌야 한다.
윤 대사대리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반도체·조선·철강·배터리 등 우리의 제조업 지렛대를 이용해 변화와 혼란 속에서 이를 악물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