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양들의 침묵

[MT시평]양들의 침묵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5.06.16 05:24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최근 극장가에 국내외 명작의 재개봉이 크게 늘었다. 이는 단순한 추억 소비를 넘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와 감정,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통찰을 관객들과 다시 나누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중 하나가 조디 포스터와 앤서니 홉킨스가 주연한 1991년 작 '양들의 침묵'이다. 토머스 해리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FBI 요원과 천재적이지만 정신병적인 범죄자의 심리전을 그린 강렬한 스릴러로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았다.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5개 부문을 휩쓸었다. 개봉 당시 국내에선 생소하던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대중에게 소개하며 범죄수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열어준 작품으로도 평가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수사극에 머물지 않는다. '침묵하는 양들'이라는 상징은 고통 속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무거운 은유를 담았다. 영화 속 '양'(lambs)은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존재들이고 그들의 '침묵'(silence)은 공포와 체념, 혹은 권력에 의해 강요된 무력함을 상징한다. 이는 단지 극 중 서사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도 화두를 던진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부실선거 문제를 보자.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며 그 공정성과 투명성은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간이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의 대규모 부정채용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수년간 제기된 투표지 관리부실, 선거인명부 오류, 중복투표 등의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선관위와 정치권, 그리고 대부분 주류언론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다. 유권자에게 선거관리의 완결성에 대해 집단적 침묵과 체념을 강요하는 듯하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선거를 치렀는데도 우리의 일상이 여전히 '내란종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침묵을 강요당한다는 점이다. 최고 권력자는 그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의 문제제기를 외면하거나 '음모론'으로 몰아가며 논점을 비껴간다. 권력자의 범죄를 수사해야 할 형사사법기관은 침묵하고 난무하는 방탄입법을 지식인은 외면하며 일부 언론은 오히려 문제제기자를 조롱하거나 배제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클라리스는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의 울음소리를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침묵 또한 훗날 되돌아보며 후회와 자책의 악몽으로 남을지 모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것이 깨어지는 순간의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침묵은 영원할 수 없으며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했다. 시민들은 충성심(loyalty)을 바탕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 끊임없이 목소리(voice)를 내왔다. 그 목소리가 외면당할 때 시민들은 결국 이탈(exit), 즉 체제의 이탈이나 공개적 저항, 심지어 체제전환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앨버트 허시먼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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