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329억원, 엔비디아 258억원, (…) 한전 5000만원.
몇 달 전 '10년 전 1억 투자시 10년 장기 보유 결과'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던 시각물 내용이다. 비트코인을 산 사람이 329배 부자가 돼 있는 사이 한전 주주는 재산이 절반으로 줄었다. 국내 주식투자자들에겐 가슴 아프지만 과장이 아닌 현실이었다.
책 '투자, 진화를 만나다'(폴락 프라사드 지음)에는 한전과 같은 공기업 주가가 부진한 이유가 설명돼 있다. 정부가 기업을 통해 다양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데 그중 일부는 가치나 수익 증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있다. 관료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주주의 이익이 아닐 수 있고, 유권자의 목표와 주주의 목표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사모펀드 운용사를 운영하는 저자는 정부 소유 기업은 항상 매수 리스트에서 뺀다고 했다.
한전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누적 적자가 43조원이다. 발전사들로부터 전기를 사들여 기업과 가계에 판매하는 사업구조로 적자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공공요금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률은 원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다. 한전이 작년 영업이익 8조원을 올렸지만 누적 적자를 해결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한전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급등했다. 주로 1만~2만원대에 놀던 주식이 7년8개월 만에 4만원대에 올랐다. 이사가 소속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됐고, 한전이 최대 수혜주로 거론된 것.
이제는 정부가 전기요금을 통제하는 것이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면 한전 이사들이 이를 따를 때 소송을 각오해야 한다. 한전 주가엔 전기요금을 가파르게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앞으로 싼 전기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한전 주주들로서는 기쁜 일이지만 일반인들에게 좋은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로서는 공적인 목적을 주주 이익과 함께 고려하는 게 공기업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도 널리 퍼진 문화다. 코로나19가 확산해 마스크가 부족해지고 중국이 복합적 이유로 요소수 수출을 통제할 때 삼성전자는 자기 업무가 아니어도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마스크 원재료와 요소수를 구해 와야 했다. 물론 뒤에는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 지난 정부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SK와 LG, 삼성, 현대차 등 기업들을 동원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재명 정부라고 다를 게 없다. 민간 기업들은 정부가 관세 협상에 활용할 대미 투자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오는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관련한 정부의 각종 협조 요청에 응해야 한다. 부작용이 일부 있겠지만,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같을 수 없는 기업까지 대의를 생각해 똘똘 뭉쳐 범국가적 현안에 대응하는 모습은 우리의 경쟁력이고 K-국난극복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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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주주 이익으로 연결되느냐다. 큰 틀에서 관세 협상이 잘 되고 국제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면 기업환경도 좋아지고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간접적인 기대효과일 뿐이지 당장 비용(또는 기회비용)이 주주 이익에 쓰이는 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처리하려는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가 들어간다. 소수 주주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기업이 공공의 가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여지는 더 축소된다.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말도 아무렇게나 갖다 쓰지 말자. 그 '선진국'이라고 일컬어 온 나라의 기업과 산업이 한국과 중국 등에 밀려 경쟁력을 오래전에 잃은 경우가 허다하다.
주주의 이익 외에는 추구할 가치가 없고, 이사들이 다른 것을 돌아보면 소송을 당하고 징계받는 기업 환경. 그게 맞는 방향이라면 단기이익 극대화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수익을 돌려주는 목적밖에 없는 일부 사모펀드들을 '약탈적 자본'이라고 부르며 도덕적으로 비난할 근거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