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위기 속에 숨은 'K노인의학' 기회

[투데이 窓]위기 속에 숨은 'K노인의학' 기회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2026.02.20 02:05
㈜휴맥스해운항공 반영은 대표
㈜휴맥스해운항공 반영은 대표

# 슬픈 과거가 남긴 의학적 유산

필자가 매일 출근하는 가산디지털단지는 젊음과 활기로 가득하다. 유동인구가 서울에서 세 번째로 많다는 가산디지털단지역 주변은 지식산업센터와 스타트업, IT·물류·전자상거래 기업이 모여 있다. 하지만 이곳은 과거 '구로공단'으로 불리며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닦은 수많은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아픈 역설이 하나 숨어 있다. 1970~80년대 구로공단이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시절 인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은 전 세계에서 '수지접합(손가락 등 절단부위 봉합) 수술'을 가장 잘하는 병원으로 알려졌다. 당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빈번하던 사고들이 역설적으로 우리 의료진에게 세계 최고의 임상경험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희생이 한국 재건성형과 외과 의학기술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밑거름이 된 셈이니 슬프고도 위대한 유산이다.

# K뷰티의 대반란, 속도와 혁신의 힘.

이러한 '위기 속의 역설'은 우리 경제 곳곳에서 재연된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은 독일의 시가총액을 추월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뤘다. 주역 중 하나가 화장품산업이다. 특히 에이피알(APR) 같은 신생 뷰티테크 기업은 혁신적인 홈디바이스를 앞세워 아모레퍼시픽 같은 전통의 강자를 위협하고 로레알 같은 글로벌 공룡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자양분 삼아 'K뷰티'라는 독보적 영역을 개척한 결과다.

뒤늦게 뛰어든 한국이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을 굴복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인 특유의 민감한 피드백과 빠른 트렌드 적응력, 그리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결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DNA가 이제 의료산업의 새로운 영역, 즉 '고령화'로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위기를 기회로.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누군가는 이를 국가적 재앙이라 부르지만 필자는 이를 구로공단 시절의 역설과 연결해본다. 당시 사고환자들을 치료하며 세계 최고의 봉합기술을 얻었듯 지금의 고령화 현상은 우리에게 '세계 최고의 노인병 치료 데이터'라는 거대한 임상시험장을 제공한다. 우리가 겪는 노인질병 문제와 고령화 극복과정은 앞으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겪을 미래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겪고 이를 치료하는 의학적 지식과 비즈니스모델을 정립한다면 이는 'K바이오'와 '노인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수출될 것이다.

# 의대증원 논란과 의료진의 새로운 사명.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현 정부에서도 의대증원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증원이 답인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우려도 크다. 정원을 늘린들 모든 인재가 성형외과나 피부과로만 몰린다면 국가적으로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최근 본 유튜브 영상에선 AI의 등장으로 신입 회계사 채용이 급감하면서 일부 회계사가 택배나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의사들도 '국내 개업의'라는 좁은 성벽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10년 이상의 수련과정을 거친 엘리트로서 이제는 전 세계 노인질병 치료에 기여한다는 더 큰 비전을 품어보면 어떨까. 우리가 가장 앞서 겪는 고령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확보한다면 그들은 세계 최고의 의학전문가이자 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글로벌 닥터'가 될 것이다.

# 슬픈 과거에서 빛나는 미래로.

과거 구로공단의 슬픈 사고들이 한국 의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듯 지금의 고령화 역시 한국이 '노인의학 강국'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우수한 인력과 디지털 전환 능력을 갖췄다. 의료계와 기업이 협력해 이 '실버'의 위기를 '골드'의 기회로 바꿀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초고령사회의 선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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