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근의 딥 포인트] 소득 불평등보다 조세 불공정이 문제다

[정철근의 딥 포인트] 소득 불평등보다 조세 불공정이 문제다

정철근 기자
2026.03.05 04:04

일하는 '흙수저' 세금 부담 커져
소득 상위 10% 세금 70% 부담
집값 급등으로 계층상승 어려워
면세점 낮추고 재정낭비 줄여야

"정철근씨는 부의 세습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요?"

1991년 10월 필자는 당시 인기직장인 종금사의 최종 면접에서 사장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 회사의 사장은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다. 자기소개서에 순진하게 1·2학년때 학생운동을 했다고 적었던 터라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의 세습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는데도 핏줄이라는 이유로 기업을 물려받는다면 계급사회인 봉건체제와 다를 게 뭡니까."

35년 전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이후 한국이 부자나라가 됐는데도 자산·소득 불평등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버지가 8살 때 돌아가셔서 동생들 학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흙수저' 출신이다. 하지만 월급을 알뜰히 모으니 결혼 3년만에 서울 동작구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당시 대기업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세금을 별로 안떼 실수령액이 많았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흙수저' 출신이라도 중산층.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겐 계층 이동을 한다는 게 점점 이루기 힘든 꿈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자산·소득의 불평등 문제는 끊임 없이 제기돼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자산 격차요인 분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소득 격차보다 자산 격차가 훨씬 크고 그 격차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1995년 이후 상위 10% 자산가가 전체 자산의 약 65%를 줄곧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장하성 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한국의 불평등은 임금·고용의 격차에서 비롯됐다"며 자산 불평등보다 소득 불평등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의 상위 10% 고소득자를 부자로 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연봉 1억원을 받아도 세금·사회보험료를 떼고나면 월 600만원 남짓 통장에 꽂힌다. 억대 연봉자라도 월급을 모아서는 급등하는 집값을 따라잡기 어렵다. 소득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24% 정도를 차지하는데 비해 세금은 70%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근로소득자중 33%는 소득세를 내지않는다. 한국의 면세자 비율은 미국(31.5%), 일본(15%), 영국(5%)보다 높다.

한국의 열심히 일하는 '흙수저' 입장에선 '소득의 불평등' 보다 '조세의 불공정'이 문제다. 자신들의 세금이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쓰이면 모르지만 상당한 혈세가 흥청망청 낭비되고 있다. 특히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에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이유로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은 보수·진보정권을 막론하고 계속 불어나고 있다.재정자립도가 형편 없는 지자체가 현금을 뿌리고 전시성 사업에 돈을 쓸 수 있는 배경이다.

한국에서 자식들에게 부를 세습할 정도로 여유 있는 계층은 극소수다. 순자산 상위 10%의 재산은 10억원 정도다. 이 중 8억원은 부동산, 2억원 정도 금융자산을 갖고있다. 이 돈으로는 부의 세습은커녕 자신들의 노후를 보내기도 빠듯하다. 주요 국가 가운데 한국은 불평등 지수가 낮은 편에 속하지만 대중들에게는 '헬조선'이란 단어가 상징하듯 가장 불평등한 사회로 인식돼있다.

유튜브에 '법륜스님&단두대'를 치면 30세 직장여성이 법륜스님 강연에서 불평등을 호소하는 동영상이 나온다. 이 여성은 " 프랑스에선 부자들을 단두대로 처형한다는데"라며 부자에 대한 극단적 분노를 표출했다. 평소 약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법륜스님도 이날은 꾸짖듯 말했다.

"지금이 역사상 가장 불평등이 적은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덕인데 그대는 뭘 기여했는가."

정철근,딥포인트,컬러컷 /사진=임종철
정철근,딥포인트,컬러컷 /사진=임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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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기자

안녕하세요. 논설위원실 정철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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