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이란 사태와 호르무즈의 경고, '해양안보'의 중요성

[청계광장] 이란 사태와 호르무즈의 경고, '해양안보'의 중요성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2026.03.17 02:00

2026년 봄, 호르무즈 해협에서 몰아치는 거센 파고는 단순한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급소를 정조준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합 공습에 맞선 이란의 해상 봉쇄 위협은 특정 해역에 대한 전략적 '해양 거부권(sea denial)' 행사가 그 자체로 얼마나 가공할 지정학적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실증한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에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분쟁을 넘어 경제 근간을 뒤흔드는 '경영·안보 복합 위기'다.

이란이 전면적인 해상 봉쇄를 전략적 포석으로 내세운 이유는 명확하다. 정규 해군력의 절대적 열세를 비대칭적 수단으로 상쇄하려는 계산이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을 점거함으로써, 서방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 경제적 파급력을 무기로 전황의 판도를 뒤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 점령보다 '흐름의 차단'을 통한 전략적 거부권 행사에 훨씬 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실제로 이란은 가성비 높은 드론, 지대함 미사일, 저가형 자살 폭발 보트 등 비대칭 무기체계를 동원해 민간 상선을 직접 타격하며 글로벌 물류망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고도의 첨단 무력 없이도 특정 해역을 언제든 '항행 불능 지대'로 만들 수 있는 '해상 위협의 보편화'가 우리 수송로의 상시적 변수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과거의 정규전 양상과 달리, 저비용 고효율 무기에 의한 '해역 전체를 위협하는 광범위한 타격 양상'은 기존 함대 보호 전술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운 새로운 안보적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러한 '해양의 요새화'는 곧 '지정학적 할증료(geopolitical surcharge)'의 상시화로 이어진다. 이란 사태 발발 이후 해상 보험료가 급등하고 물류비가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제품 가격 인상이라는 경영상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해상 물류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의 영역을 넘어, 막대한 안보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전략적 관리 자산'의 성격이 강해졌다.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정성은 국내 산업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는 치명적인 취약점이며, 이는 저성장과 고물가가 고착화되는 복합 위기를 촉발하는 결정적 뇌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은 단순 군사적 차원을 넘어 '해양 지능화'와 '전략적 자율성' 확보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선 군과 민간이 협력하여 실시간으로 바다의 상황을 파악하는 '해양 영역 인식(MDA)' 체계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AI 분석과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수로의 위협 요소를 상시 감시하고 즉각적인 우회 경로를 제공하는 스마트 항행 지원 시스템은 이제 해운 산업의 사활을 결정짓는 전략적 요체다. 정보의 격차가 곧 국가 생존의 격차로 이어지는 시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지능형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할 해군력의 양적·질적 강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 해양 안보 역량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험 지역에서 우리 상선을 끝까지 보호하며 적대적 위협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투사력(Power Projection)'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먼 바다에서도 장기 작전이 가능한 대형 함정 확보와 첨단 방어 체계 구축은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투자다.

나아가 '해양 가치 동맹'에 대한 주도적 참여와 도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인·태 지역 우방국들과의 '해상 안전 연대'를 통해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력을 높여야 하며, 에너지 도입선을 다층적 확보를 통해 유연한 국가 복원력을 갖춰야 한다.

안보는 예측이 아니라 대비의 영역이다. 해상 수송로 마비는 국가 존립을 흔드는 생존 문제다. 바다가 평화로운 공공재라는 낙관론은 이제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우리가 직접 바닷길 안정을 관리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양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요새화되는 바다의 파고를 넘지 못하면 경제 침체와 안보 불안은 피할 수 없다. 결국 바닷길을 수호하는 역량이 곧 21세기 대한민국의 실질적 국력이자 주권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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