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식탁 접시만 한 커다란 칩이 엔비디아를 긴장시킬까

[유효상 칼럼] 왜 식탁 접시만 한 커다란 칩이 엔비디아를 긴장시킬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5.26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지난 5월 14일 나스닥에 상장한 AI 스타트업 주가가 공모가보다 두 배 높은 가격에서 거래를 시작했지만, 매수 주문이 너무 많이 쏟아져 거래소 시스템이 잠깐 멈췄다. 그 주인공은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AI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칩에서 작동한다(The world's fastest AI runs on the world's biggest chip)'는 슬로건을 내세운 세레브라스는 앤드류 펠드먼(Andrew Feldman)이 2016년 창업했다. 펠드먼은 스탠퍼드 MBA 출신으로, 2007년 에너지 효율 마이크로서버 기업 SeaMicro를 창업해 AMD에 매각한 후 직원들과 또다시 새로운 회사를 시작한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다. 돈이 목표가 아니라, "컴퓨터 역사 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에 이름을 남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세레브라스의 출발이었다.

세레브라스는 초고속 AI를 위해 기존 엔비디아의 GPU보다 무려 58배나 더 큰 칩을 만들었다. 이는 반도체 업계의 70년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무모한 행동으로 비춰졌다. 지금까지 모든 칩 회사는 하나의 웨이퍼에서 수백 개의 작은 칩을 만들어냈지만 세레브라스는 정반대로 갔기 때문이다. 웨이퍼 전체를 단 하나의 칩으로 쓰는 WSE(Wafer-Scale Engine)라 불리는 이 아이디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황당하다고 느꼈고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웨이퍼가 클수록 미세한 결함 하나로 칩 전체가 무용지물이 돼 수율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펠드먼 팀은 이 상식을 뒤집었다. 창업 후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WSE를 만들어낸 것이다. 무모하다는 비판을 들으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성공했다. 업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펠드먼은 "인텔의 10만 명도, 엔비디아의 4만 명도 해내지 못한 것을 우리 85명이 해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022년, 실리콘밸리 중심부인 마운틴뷰에 있는 컴퓨터 역사 박물관은 세레브라스의 WSE-2를 영구 소장품으로 등재했다.

기존 AI 칩(엔비디아 H100 등)이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의 우표 크기인 반면, 세레브라스의 칩은 가로·세로 약 22cm 크기의 거대한 사각형 모양이다. 세레브라스가 WSE를 처음 공개했을 때, 글로벌 IT 전문 매체와 테크 기자들은 그 압도적인 크기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식탁 접시만 한 거대 칩(a dinner-plate-sized chip)'이라는 표현을 썼다. 펠드먼도 'Dinner-plate'라는 표현을 자주 인용하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각인되었다.

이 놀라운 기술에 대한 검증은 Artificial Analysis 등 제3자 AI 성능 분석 기관들이 진행했다.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세레브라스의 'Fast Inference Cloud(신속 추론 클라우드)'는 거대언어모델(LLM) 추론 속도에서 엔비디아 H100 대비 특정 워크로드에서 최대 20배 이상 빠르다는 성적표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술 검증을 수행하는 주체는 최첨단 AI 모델을 돌리는 고객사들이다. 세레브라스는 이들로부터 조 단위의 상용화 계약을 따내며 성능을 입증했다. 오픈AI는 심층 분석한 끝에, 자사의 추론(Inference) 인프라 핵심 하드웨어에 세레브라스 칩을 사용하기로 하고, 대규모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샘 올트먼 등 오픈AI 경영진들은 개인적으로 세레브라스의 주식을 취득할 정도로 기술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였다. 또한 아마존(AWS), 메타, IBM, 미스트랄(Mistral) 등도 세레브라스의 칩을 사용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었다.

세레브라스가 처음 상장을 시도한 것은 2024년 9월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매출의 85%가 'G42'라는 아랍에미리트(UAE) AI 기업 한 군데서 발생한다고 하여,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안보 이슈를 제기했다. 미국 첨단 반도체의 핵심 고객이 중동 국가에 편중된 구조는 규제 당국이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2025년 10월, 세레브라스는 상장 신청을 철회하고, 빅테크 회사들을 상대로 마케팅에 전념하며 고객사 다변화에 나섰다.

2026년 1월, OpenAI와 200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3월에는 AWS가 자사 데이터센터에 세레브라스 칩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G42 의존도는 2025년 매출 기준 24%로 떨어졌다. 매출은 5억 1000만 달러로 76% 성장했고, 2024년 4억 8000만 달러 순손실이던 회사는 2025년 2억 3800만 달러 순이익을 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매출구조 리스크를 털어낸 자리에, 막강한 고객들이 들어섰다.

걸림돌을 제거한 세레브라스는 다시 나스닥에 문을 두드렸다.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엄청나게 뜨거웠다. 공모가는 당초 예상(115~125달러)을 두 차례 상향 조정한 끝에 185달러로 확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장 첫날 호가는 350달러였다. 장중 386달러까지 치솟았다가 311달러로 마감했다. 하루에만 무려 68%나 상승했다. 시가총액은 950억 달러를 넘었다. 불과 3개월 전 기업가치가 230억 달러였던 회사가 상장 당일 그 네 배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상장을 통해 조달한 금액은 2019년 우버 IPO 이후 미국 테크 기업 최대 규모였다. 주주 구성도 이 베팅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Fidelity, Benchmark, Foundation Capital 등 세계적인 투자사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으며, 펠드먼은 19억 달러의 지분을 쥐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상장 후 단지 11일 만인 5월 25일부터 Fast Track IPO Entry 규정에 따라 S&P 500에 편입된다는 것이다. Fast Track 규정은 시가총액이 큰 우량기업에 대해 1년간의 모니터링 기간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 반응을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기술의 타이밍이다. AI가 '학습(Training)'에서 '추론(Inference)'의 시대로 넘어가는 지금, 세레브라스의 WSE 아키텍처는 이 추론 워크로드에서 엔비디아 GPU 대비 최대 15~20배 빠르다. 엔비디아 GPU로 대규모 언어 모델을 구동하려면 수만 개의 칩을 복잡하게 연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 전송 병목과 막대한 전력 소모가 발생한다. 세레브라스의 단 하나의 거대한 칩은 이 병목을 구조적으로 없앤다.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공급 부족과 높은 가격에 지쳐 대안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시점에서, OpenAI와 AWS의 선택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둘째는 숫자의 힘이다. 아직 매출로 인식되지 않은 '확정 수주 잔고(RPO)'가 246억 달러로 연매출의 약 48배다. OpenAI와의 계약 하나만으로도 향후 수년간의 성장이 사실상 보장된 셈이다.

셋째는 공급 부족이다. 2025년 미국 테크 IPO는 31건에 불과했다. 테크 기업의 상장 기근 속에서 AI 인프라에 투자할 기회를 갈망하던 자금이 한꺼번에 몰렸다. 상장 수요예측 당시 기관 수요가 공모 주식의 20배를 넘은 것은 그 굶주림의 방증이었다.

상장 다음 날 세레브라스 주가는 10% 넘게 빠지며 279달러로 마감했으며, 1주일간 256~303달러를 오가며 조정을 받고 있다. 전형적인 IPO 직후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레브라스의 등장이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거란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엔비디아의 범용 GPU 시장 전체를 대체하는 것은 어렵지만, AI 시장의 고부가가치 핵심인 '거대 모델 추론 및 특수 목적 슈퍼컴퓨팅' 영역의 헤게모니를 빼앗아올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판매에서 클라우드 인프라 서비스로의 전환이 성공한다면, 엔비디아의 독점이 깨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ARM과 소프트뱅크가 상장 전 세레브라스를 고가에 인수하려고 했던 것 역시 이 지각변동을 두려워하는 기존 강자들의 방어 본능에서 나왔다.

반도체 패권의 역사는 늘 불가능에 도전했던 파괴적 혁신가들의 편이었다. 작은 스타트업이 던진 도전장이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를 흔드는 강력한 메기가 된 지금, AI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