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가 '도그 휘슬(Dog Whistle)' 논란에 휩싸이며 신세계 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놓였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평범한 음료 프로모션이었지만, 일부 집단에서는 이벤트에 사용된 단어·날짜·이미지의 조합이 '5·18 민주화운동 비하·조롱'의 의미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불매운동과 회장 퇴진 운동이 벌어지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됐고, 외신들도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러나 극우 성향 인물들은 오히려 '멸공커피' 태그를 달며 매장 방문 인증샷을 올렸고, 결국 한 기업의 마케팅 이슈가 정치·사회적 대격돌로 비화됐다.
도그 휘슬은 사람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초고주파 호루라기로,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갈턴(Francis Galton)'이 인간과 동물의 '청각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 발명했다. 복잡한 공원에서도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로 자신의 개만 조용히 불러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정치권에서 특정 지지층을 자극하는 '암호 코드'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듣게' 설계된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는 의미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다 AI 기술이 정점에 달한 지금, 도그 휘슬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가장 먼저 이 현상이 도드라지는 곳은 디지털 플랫폼 세계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거대 플랫폼들은 AI를 동원해 자극적이거나 위험한 단어를 실시간으로 검열한다. '노란 딱지(Limited or No Ads)'를 받거나 계정이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크리에이터들과 마케터들은 AI는 알아채지 못하지만 인간은 쉽게 이해하는 언어를 창조했다. 예컨대 '죽음(Death)' 대신 '언라이브(Unlive)'라는 신조어를 쓰고, 아주 민감한 이슈는 다양한 이모티콘을 조합해 소통한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끼리만 완벽하게 통용되는 숨겨진 상징과 언어를 창조한 것이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의 도그 휘슬도 더 창의적으로 진화하는 흥미로운 언어 전쟁이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도그 휘슬을 부는 주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다. 연준은 금융 시장이 놀라 과민 반응하며 큰 충격을 받는 '발작(Taper Tantrum)' 현상을 막기 위해 대중에게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단어를 쓰지만, 채권 트레이더들은 그 단어 하나로 수조 원 베팅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상당 기간(Considerable period)', '인내심(Patient)', '체계적인(Methodical)'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FOMC 성명서에서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삭제되거나 '상당 기간'이 빠지는 것은 "정확히 2~3회 뒤 회의에서 금리를 인상(또는 인하)하겠다"는 확실한 예고 시그널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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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도그 휘슬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기법 자체가 '부인 가능성(Plausible Deniability)'이라는 방패를 핵심 동력으로 삼는 '양다리 전략'이기 때문이다. 도그 휘슬로 사용되는 단어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표면적 무해함'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발신자는 "그 단어는 사전적으로 이런 뜻일 뿐"이라거나 "디자인 과정에서 우연히 나온 모양"이라고 발뺌할 수 있다. 비판하는 쪽을 오히려 '예민하고 피해망상적인 사람'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물증 없는 심증만 남게 된다.
트럼프 1기 시절, 스포츠용품업체 뉴발란스(New Balance) 임원이 미국 제조업 보호 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대안 우파(Alt-right)와 백인 우월주의 커뮤니티는 이를 도그 휘슬로 해석했다. 네오나치(Neo-Nazi) 매체는 뉴발란스를 '백인의 공식 신발'로 지정했고, 진보 성향 소비자들은 운동화를 변기에 버리는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이에 놀란 회사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해명을 반복하며 수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미지를 복구해야 했다. 비록 기업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도그 휘슬로 해석된 순간 타격은 실재한다는 잔혹한 교훈을 남긴다.
2025년 하반기, 할리우드 스타 시드니 스위니가 출연한 리바이스 광고는 학계와 평론가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도그 휘슬 논쟁'으로 비화됐다. 광고는 유전자(Gene)와 청바지(Jean)의 언어유희를 활용했는데, 진보 진영은 금발, 푸른 눈, 백인 여성의 신체를 극대화한 연출과 '우월한 유전자' 강조 카피의 조합이 백인 우월주의 코드를 은밀히 자극한다고 비판했다. 2023년 말 자라(ZARA)의 의류 광고 캠페인도 비슷한 논란을 낳았다. 흰 천으로 감싸진 마네킹과 무너진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한 연출이, 가자지구 분쟁이 격화되던 시기에 희생자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자라 측은 "분쟁 이전에 기획된 예술적 연출"이라고 해명하며 이미지를 즉각 삭제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2020년 말, 일본 화장품·건강식품 기업 DHC는 최고경영자가 경쟁사 산토리(Suntory)를 저격하며 "모델들이 거의 모두 재일 한국/조선인 계열"이라는 극우 혐한(嫌韓) 표현을 공식 온라인몰에 게재했다. 대중적 브랜드 이미지를 포기하더라도 보수·극우 성향 소비자층을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묶어두려는 의도였다. 결과는 한국 시장 완전 퇴출과 일본 내 대대적인 불매운동이었다.
도그 휘슬은 특정 집단 내부의 '서브컬처 맥락(Subcultural Code)' 안에서만 해독된다. 신호의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반짝 유행하는 암호인 경우가 많아, 사후에 의도성을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욱이 생성형 AI가 콘텐츠 생산의 주역이 되면서 판단은 더 복잡해졌다. AI가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특정 패턴이나 상징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의도적인 프롬프트'의 결과물인지 'AI 알고리즘의 무작위적 조합'에 의한 우연인지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AI의 블랙박스' 뒤로 숨어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도 크다.
신호를 받는 수신자 측의 심리적 요인도 판단을 흐리게 한다. 특정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자신들만의 암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말로 우연히 발생한 평범한 디자인 요소조차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발신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수신자가 의도가 있다고 믿어버리면, 사회적으로는 '의도된 도그 휘슬'로 박제되어 버리는 역설이 발생한다. 결국 도그 휘슬의 의도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우연의 반복성'과 '맥락의 일관성'이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도그 휘슬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장의 낙인(Market Stigma)'이다. 기업이 백 번 억울하다고 항변해도, 핵심 소비층이 브랜드를 도그 휘슬로 인식하고 지갑을 닫는 순간, 비즈니스적으로는 이미 판정 난 것이다. 매우 드물지만 사태가 소송이나 수사로 번질 경우, 법적 판단이 개입하기도 한다. 단, 법원은 '의도성(고의성)'을 엄격하게 입증해야 하므로 도그 휘슬 자체를 처벌하기보다는, 그로 인한 명예훼손, 차별 행위, 혹은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가 성립하는지를 사후적으로 판단한다.
스타벅스, 뉴발란스, 리바이스, DHC 사태를 분석하는 가장 날카로운 잣대는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다. 브랜드 액티비즘이란 기업이 사회의 민감한 정치·환경·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사의 목소리(신념)를 내고 행동하는 비즈니스 전략이다. 도그 휘슬과의 차이는 '공개적 선언' 여부다. 파타고니아나 나이키는 가치관을 당당히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모호한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대중 앞에 당당히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정 진영에만 소구하는 '도그 휘슬적 요소'를 섞어 넣는 '하이브리드형 기만'을 저지르기도 한다.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닌 태도다. 이제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우연'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비겁함이 아니라, 떳떳할 수 있는 '투명한 진정성'이다. 의도하지 않은 신호조차 실력으로 박제되는 지금, "몰랐다"는 변명은 면죄부가 아니라 단지 무능의 선언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