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 자본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주주 권익 제고, 이른바 밸류업이다. 그 한복판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제도가 '소수주주 다수결(MoM, Majority of Minority)'이다. 물적분할이나 계열사 간 합병처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상충이 우려되는 구조개편에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완전히 제외하고, 오직 소수주주들만의 다수결로 안건 통과 여부를 정하는 방식이다.
상장사의 쪼개기 상장이나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일반주주들에게는 벼랑 끝에서 등판한 구원 투수처럼 보인다. 실제로 국회와 시민단체, 특히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법제화 요구가 거세다. 일각에서 MoM이 대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지만, 제도의 본질은 '이해상충이 있는 지배주주'의 의결권만을 제한하는 핀셋 규제라는 점에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시장 전문가들과 학계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우려를 쏟아낸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이 제도가 치밀한 안전장치 없이 의무화될 경우, 자칫 기업의 영속성을 해치고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주주 지분율이 40%, 소수주주 지분율이 60%인 회사가 물적분할이나 합병 같은 중대한 안건을 주주총회에 올린 상황에서, 전체 발행주식 중 오직 10%에 해당하는 소수주주들만 주총에 참석했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의 일반적인 주주총회 방식이라면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구분 없이 실제 출석한 주식 수(총지분의 50%)만을 기준으로 계산하므로, 일반결의 통과 기준인 과반수(총지분의 25%를 초과하는 수준)를 채우기 위해 대주주 혼자 찬성표(40%)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안건은 압도적인 표 차로 손쉽게 통과된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으면 소수주주의 목소리가 무력화되는 기존 방식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반면 MoM 방식을 적용하면 대주주의 지분 40%를 완전히 배제하여 0주 처리한 뒤, 오직 주총에 참석한 소수주주의 지분(전체 주식의 10%)만을 기준으로 다수결을 따지게 된다. 이 경우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지분의 과반인 '전체 주식 대비 5%'를 초과하는 찬성이 필요하다. 뒤집어 말하면, 전체 지분의 고작 5%만 반대해도 40%를 보유한 대주주가 찬성한 안건을 완전히 부결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극소수의 반대만으로, 대주주 40%와 주총에 불참한 소수주주 50%, 찬성표를 던진 나머지 소수주주까지 합친 무려 95%에 달하는 전체 의사가 완전히 묵살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Wag the dog)'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주 적은 지분으로 단기 수익만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나 특정 소수 세력이 소수주주 표심을 선동하여 기업의 명운이 걸린 구조조정이나 자금 조달을 마음대로 무산시키는 소수의 횡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MoM이 가진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더 많은 자본과 리스크를 짊어진 주주가 그에 비례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1주 1표'라는 자본주의 시장의 순리다. 그러나 MoM은 지분 30~40%를 가진 대주주의 손발을 묶고, 단 1%의 지분을 가진 소수주주 연합에게 절대적 거부권을 쥐여주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투자 리스크와 책임의 심각한 비대칭성을 초래한다. 대주주는 기업 가치가 폭락하면 수천억 원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지만, 단기 차익을 노리고 진입한 소수주주는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이 기업의 운명을 가를 결정권을 갖는 순간, 시장은 단기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을 안게 된다.
독자들의 PICK!
여기에 더해 이 제도는 행동주의 펀드와 글로벌 사모펀드가 노리는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펀드가 3~5% 안팎의 지분을 확보한 뒤 소수주주를 규합해 표결을 부결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기업은 안건 통과의 대가로 자사주 고가 매입이나 무리한 배당을 요구받기 십상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이른바 '알박기'로 폭리를 취하듯, 지분을 무기로 경영진을 협박해 자신들의 주식을 비싸게 되사도록 만드는 합법적인 '그린메일(Greenmail)'이 자본시장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경쟁사가 소수 지분으로 상대의 핵심 합병·투자 안건을 고의로 부결시켜 사업 기회를 박탈할 가능성도 있다. 비즈니스는 타이밍의 싸움인데, 표 대결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거나 안건이 부결되면 경영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져 꼭 필요한 구조개편 자체를 포기하는 경영 위축으로 이어진다.
MoM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델 컴퓨터다. 2013년 창업자 마이클 델은 행동주의 펀드들의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를 비공개로 전환하고자 사모펀드와 손잡고 합병을 통한 상장폐지를 추진했다. 이때 마이클 델이 MoM을 수용한 것은 법적 강제에 따른 것이 아니라, 향후 일반주주들로부터 제기될 불공정 소송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자발적 방어 장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칼 아이칸을 비롯한 행동주의 펀드들이 매수 가격이 낮다며 일반주주들을 규합해 표결을 부결시키겠다고 강하게 압박했고, 결국 델 회장은 매수가격을 올리고 특별 배당까지 얹은 뒤에야 겨우 과반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MoM의 절대적 거부권이 행동주의 펀드의 협상 무기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제도를 유연하게 운용 중인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선진 시장도 이 부작용을 잘 알기에 MoM을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사법부의 판단이나 시장의 자율적 보완 장치로 신중히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 MoM은 몇 차례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된 적은 없다. 지난 2024년 11월 영풍·MBK 연합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맞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지배구조 쇄신안의 하나로 이사 선임 시 MoM 도입을 제안한 바 있으며, 올해 상반기 이마트가 신세계푸드의 자발적 상장폐지를 위해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산정된 교환가액이 너무 낮다며 소수주주 측이 MoM 도입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신세계푸드는 법무부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MoM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그었고, 결국 지난 6월 임시주주총회는 MoM 없이 찬성률 71.6%로 안건을 가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MoM을 법제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주주들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조차 소수주주의 눈치를 보느라 손대지 못하게 되고, 그 끝에서 국내 증시를 유지할 이유를 찾지 못한 대주주들은 차라리 자진 상장폐지를 하거나 해외 상장을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본을 조달해야 할 상장 시장이 오히려 경영권을 위협받는 무대로 변한 탓이다.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다른 체질을 가진 시장에서 오랜 시간 정교하게 조제된 약을, 용법과 용량도 따지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처방하려는 조급함에 있다. 맹목적인 MoM 도입은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고 사냥꾼에게 무기를 쥐여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주총에 참석한 소수주주의 과반이 아니라, 미국 일부 주의 입법례처럼 소수주주 찬성표의 합이 '전체 발행주식 총수의 최소 비율(예: 20~25%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는 '최소 찬성 요건'을 병행 도입해야 한다. 출석률이 낮을 때 극히 낮은 지분으로 전체 의사를 왜곡하는 '소수의 횡포'를 막기 위함이다. 아울러 모든 구조개편에 MoM을 일률 적용하기보다는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위험이 명백한 특정 거래에만 선별적으로 제한 적용하는 안전장치 설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규제가 정교함을 잃고 명분에만 함몰되는 순간, 선한 의도는 오히려 독이 된다. 그로 인한 부작용과 막대한 비용은 결국 자본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