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예술과 정부 사이 '팔 길이'

[우보세]예술과 정부 사이 '팔 길이'

최우영 기자
2026.10.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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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존 케인스는 세계 예술정책의 규범을 만들었다. 1946년 영국예술위원회를 창설하면서 자리잡은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정부가 문화예술에 돈은 대되 쓰임에 개입하지 않도록 '팔 하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란 뜻이다. DJ(김대중)정부는 2000년 최초로 전체 예산의 1%를 문화분야에 배정하며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세웠다.

핵심은 이 '거리'를 제도화하는 데 있다. 정부가 직접 지원대상을 정하는 대신 독립적인 중간단계를 끼워넣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모태펀드도 한국벤처투자가 민간 운용사를 선정하고 어떤 영화에 얼마를 넣을지는 운용사의 판단에 맡기는 구조다.

이토록 번거로운 장치를 만든 이유는 명확하다. 돈을 주는 쪽이 작품의 내용까지 정하면 그건 지원이 아니라 '발주'다. 북한 선전영화 같은 '관급 예술'만 남고 관객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영화는 설 자리를 잃는다. 창작자가 지원여부를 계산하며 스스로 검열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선 영화 '암살자(들)'에 모태펀드 돈이 들어갔다는 비판과 함께 정치적으로 편향된 영화는 걸러내라는 요구가 나왔다. 공적자금 집행에 대한 관리·감독은 당연하다. 다만 일부 정치권의 콘텐츠 검열요구는 80년간 이어진 '팔 길이 원칙'을 흔들고 있다.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영화의 내용에는 관여할 부분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그래서다.

국내 영화산업은 혹한기를 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극장 매출액은 4191억원으로 전년보다 39.4% 줄었다. 코로나19 기간을 빼면 2009년 이후 최악이다. 앞선 2024년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16.4%였다. 민간자본이 등을 돌리면서 신작 라인업도 빠르게 얇아진다.

투자가뭄 속에서 영화산업을 묵묵히 지키는 것은 '인내자본' 모태펀드다. 2010년부터 1000만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 25편 중 19편에 모태펀드가 들어갔다. 산업화 세대를 칭송한 '국제시장'부터 독립운동을 다룬 '암살'까지 성향을 가리지 않고 '암살자(들)'과 같은 경로로 돈을 받았다. 모태펀드가 자리를 지킨 덕분에 역대 최고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도 나올 수 있었다.

영화의 세계관에 누구나 동의할 필요는 없다. 관객의 혹평과 불매운동 역시 자유다. 하지만 정치권이 그 불만을 투자구조에 반영하는 순간 다음에 기획조차 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영화가 어떤 것일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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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기자

미래산업부 유니콘팩토리에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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