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고교체제 개편 '기대반 우려반'

[기자수첩]고교체제 개편 '기대반 우려반'

최중혁 기자
2009.12.14 07:41

반골 기질이 있는 학부모 A씨는 학창 시절 단순 암기지식을 묻는 시험문제가 나오면 '교과서에 나와 있음'이라고 답해 선생님에게 혼쭐이 난 기억이 있다. A씨는 학생운동권을 거쳐 평범한 샐러리맨이 돼 있다. 모범생이었던 학부모 B씨는 단순암기에도 소홀하지 않아 늘 전과목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B씨는 명문대를 나와 고액연봉자로 산다.

친구사이인 두 사람의 술자리 교육논쟁. "시대가 바뀌고 있다구. 이젠 전과목 100점을 맞아야 하는 단순암기의 시대는 지났어. 자기주도학습이 대세이고 대학입시도 입학사정관제가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어. 잠재력과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지."

A씨의 주장에 B씨는 반박한다. "입학사정관 시대라고 본질이 바뀐 게 있어? 70만 수험생 중에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 있지. 남들보다 내가 뛰어나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증명해야 해. 문제는 변별력이야, 이 바보야."

우여곡절 끝에 '고교체제 개편방안'이 지난 10일 발표됐다. 관심의 초점이 됐던 외국어고 개혁 문제는 정원을 줄여 존속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대신 교육과학기술부는 외고의 사교육비 유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신입생을 뽑을 때 자기주도학습 전형 중심의 입학사정관제를 100% 실시하기로 했다.

특목고 입시를 자기주도학습 전형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주도학습은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고 점검하는 학습법이기에 학원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요령만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대로 잘 정착되기만 하면 사교육비 문제 해결은 물론, 학생 개개인의 창의력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개념만 있지 이론 하나 제대로 정립된 게 없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실시하려면 자기주도학습자를 구별해 낼 수 있는 구성요소와 측정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입학사정관들이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과연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교과부는 미래형 교육과정 개편, 입학사정관제 실시 등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늘 강조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반신반의한다. 정부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교육은 부동산처럼 정부안과 반대로 움직여야 성공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교과부가 남은 1년 동안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잘 준비해 학부모 B씨가 바보소리 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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