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혼자 반대 與의원, 그 후 2년…

한미FTA 혼자 반대 與의원, 그 후 2년…

김성휘 기자
2013.08.12 06:28

[재선의원을 말한다]정치 내공 23년, 황영철 안행위 간사

국회 본회의장엔 대형 전광판이 두개 있다. 전자표결시 찬성이면 녹색, 기권이면 노랑, 반대면 빨강 불빛이 해당 의원 이름 앞에 표시된다.

2011년 11월22일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본회의 표결. 황영철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이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장내가 술렁였다. 한미 FTA를 지지한 여당 내 유일한 반대표였다. 야당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그야말로 '나홀로' 반대. 게다가 그는 당 원내대변인이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한미 FTA 국회본회의 표결 당시 "지역 주민과의 약속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했다./사진=머니투데이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한미 FTA 국회본회의 표결 당시 "지역 주민과의 약속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했다./사진=머니투데이

"그래도 서 너 명은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 혼자…. 곤혹스러웠지만, 오히려 지역에선 의미 있게 받아들여주셨어요."

황 의원이 정치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그는 올해 만 48세이지만 정치경력은 23년째다. 1991년 지방자치 부활 원년에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군의원(기초의원)으로 시작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5살 청년 시절이다. 이후 광역의원(강원도의원), 정당 원외 지역위원장을 거쳤다. 국회는 16·17대 낙선 경험을 딛고 18대 총선에야 입성했다. 차곡차곡 쌓은 정치내공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원내대변인이 당 입장에 반대하느냐고 핀잔도 들었죠. 투표일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했는데 '지역 주민과의 약속은 지켜야겠다. 이 약속 어기면 국회의원으로 신의도 잃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젊은 피 또는 전문가 영입 등 정치권 밖에서 정치권에 '진입'한 이들은 많지만 처음부터 정치인으로 성장한 경우는 드물다. 한미 FTA 표결 등 잇단 소신 행보도 이처럼 현장에 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현안마다 소신행보 "나는 의회주의자"= 국회선진화법과 지방의회 정당공천 폐지, NLL(서해북방한계선) 회의록 공개 논란, 대체휴일제 논쟁에서도 당 지도부를 무조건 추종하지 않았다. 정당공천제에 대해선 "후보자를 걸러내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다"며 "현재로선 무공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장점을 살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NLL 회의록 공개 논란 때는 당 의원총회에서 공개를 반대하는 소신발언으로 주목 받았다. 그는 "큰 틀에서 정치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보다 사안 하나하나에 매몰돼 투쟁을 낳는 경우가 많다"며 "역사의식을 갖고 큰 흐름에서 보면 어떤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답은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혼자 튄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데 거꾸로 승승장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그를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황우여 대표는 자신의 첫 비서실장으로 그를 낙점했다. 지금은 국회 안전행정위 간사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머니투데이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뀔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사진=머니투데이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머니투데이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뀔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사진=머니투데이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 대체휴일제 도입은 설·추석부터 점진적으로 시행하게 됐다. 안행위 간사인 그는 재계 우려 등을 의식한 당 지도부보다는 오히려 안행위 야당의원들과 소통하면서 사회적 의제를 이끌었다.

"국회의원은 갈등을 유발해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경우, 가능하면 타협하고 의회주의를 중시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어요. 저는 후자이고, 그런 의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풀뿌리 정치부터 23년, '모델' 꿈꾼다=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22년 전 제자의 질문에 은사(恩師)인 황수익 서울대 교수가 답했다. "잘 생각했다. 네가 모델이 돼라."

전재산 60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간 청년은 선배가 빌려준 땅에 비닐하우스로 선거캠프를 차렸고 거기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해 결혼했지만 그 시절 지방의원은 무보수였다. 몇 해 동안 가장으로서 집에 가져간 돈은 1년에 100만원 정도였다. 굴하지 않고 한걸음씩 내딛었고 어느새 강원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 그는 "당장은 아니"라면서도 "제가 지역발전에 힘이 될 수 있을 때 도지사에 도전해보겠다"고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오랜 꿈은 더 있다. 밑바닥부터 시작했기에 더 절실한지도 모른다.

"강원도에 산이 많잖아요. 산림정책을 배우러 지난달 독일을 갔습니다. 함께 갔던 분들께 귀국 후 안부를 물었더니 고맙게도 '좋은 국회의원 모습을 봐서 좋았다'고 답이 왔어요. 쉽지 않고 오래 걸리겠지만,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뀔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강원 홍천(만48세) △홍천고,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도지사 정무특보 △18·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대변인 △새누리당 대표 비서실장 △(현)국회 안전행정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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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휘 국제부장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유니콘팩토리) 김성휘입니다. 국회/정당/청와대를 담당했고(정치부) 소비재기업(산업부), 미국 등 주요증시/지정학/국제질서 이슈를(국제부) 다뤘습니다. EU와 EC(유럽연합 집행위),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등을 경험했습니다. 벤처스타트업씬 전반, 엔젤투자, 기후테크 등 신기술 분야를 취재합니다. 모든 창업가, 기업가 여러분의 도전과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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