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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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상한제나 분양원가 공개 도입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실무경력이 있는 건설업계와 시민단체, 국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민 대토론'을 합시다." 새해 벽두부터 전국이 온통 부동산 문제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 중심에는 민간업체들이 공급하는 민간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규제가 놓여있다. 핵심 논제는 '분양가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 여부다. '분양가상한제'에 대해서는 이미 당정이 지난달 중순 협의를 통해 도입키로 확정한 상태다. 시행시기는 오는 9월로 책정해 놓았다. 문제는 '분양원가 공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고분양가를 해결하고 집값을 잡기 위해선 '분양가상한제'와 함께 '원가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맞서고 있다. 당정간 물밑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당정은 오는 11일 고위 당정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매듭지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건설업계도 그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모든 회사의 경영활동은 현장에서 나와야 합니다. ‘Plan-Do-See’라는 경영과정은 모두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인데요, 현장과 단절된 상태에서 ‘Plan’이 나오면 그건 탁상공론일 것입니다.” SK증권 김우평 사장은 경영진과 현장의 만남이 회사를 유지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경영진은 현장을 알아야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있고, 현장 또한 경영진과 자주 만나야 자신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실행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게 김 사장의 경영방침이다. 이러한 경영방침을 실행에 옮기 듯 김 사장은 정기적으로 지점을 방문해 구성원들의 애로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중시한다. 또 지난해부터는 경영진과 사원들간의 ‘포장마치 간담회’를 갖고 직원들 입장에서 좋은 영업환경을 만들기 위한 의견을 기탄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하고 CEO 입장에서는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김 사장은
"전세계에서 카지노와 스키장을 함께 갖고 있는 곳은 강원랜드가 유일합니다." 조기송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12월8일 개장한 스키장 얘기가 나오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 톤도 높아졌다. 학자다운 차분한 면모는 이내 열정적인 CEO의 얼굴로 변했다. 카지노업체 강원랜드에 입성한 지 8개월째. 조 사장은 강원랜드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는다. "더이상 나빠질 이미지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조 사장 취임 후 전략도 '방어'에서 '공격'으로 변했다. "있는 그대로만 알려도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란 자신감이다. '도박' 이미지를 벗고 스키장에 이어 종합레저타운을 꿈꾸는 그와의 만남은 강원랜드를 향한 '오해 풀기 과정'이자 '미래 찾기'였다. ―강원랜드에 대해 '오해'도 많은 것같습니다. ▶많습니다. 도박중독의 주범, 돈세탁의 온상 등 부정적 이미지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오해라는
전북은행 홍성주 행장(사진)에게는 은행권 '최고령 CEO'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1964년 한국은행을 시작으로 40여년 넘게 은행원 생활을 했으니 국내 은행권의 산 증인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최고령'이란 말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정력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CEO인 그에게 '나이'란 생물학적 나이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CEO는 실적으로 말한다'는 경구를 감안하면 '최고령 CEO'보다는 '최우량 CEO'가 차라리 적합한 표현이다. 홍 행장은 1941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만 65세다. 전라북도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1964년 서울대 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7년 외환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브로드웨이 지점장 등 주로 미국과 영국지점장을 지냈고 상무이사 자리를 끝으로 1999년 서울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전북 출신인 홍 행장이 전북은행과 연을 맺은 것은 2001년의 일이다. 당시
전북은행은 주식시장에서 주목하는 몇 안되는 은행 중 하나다. 자산 6조원이 채 안될 정도로 국내 은행권에서 가장 작은 은행이지만 내실은 어느 은행보다 튼튼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올해도 전북은행은 꿋꿋이 '제 갈 길'을 갔다. 무리한 자산 확대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창출과 자산건전성에 초점을 둔 결과 올 3분기에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많고 많은 은행업계의 '골리앗'들이 아닌 '다윗' 전북은행을 주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잘 나가는' 전북은행의 뒤에는 홍성주 행장(사진)의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은행의 성쇠는 홍 행장 취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1년 취임해 2004년 연임에 성공한 홍 행장은 '지역밀착형 소매금융 중심 경영'을 기치로 전북은행을 우량 지방은행으로 탈바꿈시켰다. 홍 행장 취임 직전인 2000년 433억원의 자기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전북은행은 '공적자금' 대신 'CE
조생현 보령메디앙스 대표는 마음 한 구석에 빚이 있다. 아기들로부터 돈을 버는 회사의 대표이기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해외 입양길에 오르는 아기들을 보면 맘이 편치 않은 것이다. 올해 초에는 입양가는 아기들이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지내는 곳을 조금이나마 꾸며주고 싶어 홀트아동복지회관에 아기방을 새로 꾸미기도 했다. "우리와 피 한방울도 안 섞인 홀트가(家) 사람들이 우리 아기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뿐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도 조금이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보령메디앙스는 국내 입양에도 앞장서고 있다. 우리가 낳은 아기를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이를 위해 홀트아동복지회와 손잡고 육아용품 지원 등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또 구순열이나 구개열 등 선천성 기형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특수 젖꼭지를 무료로 배포하는 사업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아이맘 가이드북 베
"하루에 직원 3사람을 무조건 칭찬하고 주 1회는 현장에 나가 결재를 합니다. 또 한달에 한 번은 회사 밖 호프집에서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연 매출 560억원이던 보령메디앙스를 취임 3년 만에 1000억원대 회사로 키운 조생현 대표의 말이다. 직원들과, 또 고객들과 함께 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고민하던 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람회나 설명회에서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산모에게 '왜 그 제품을 쓰는지' 물어보면 보령메디앙스가 개선해 나갈 방향이 절로 보입니다. 마케팅이 중요한 소비재 시장에서 고객과 함께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보령메디앙스가 저출산의 시대에 고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결혼해 아이 한 명을 낳는 저출산 시대는 유아용품 회사 입장에서 이만저만 힘든 상황이 아니다. "보령메디앙스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110만명이 넘던 고객(신생아)이 이제는 50만명에 불과하다"는 조 대표의 말 그대로다
'슈가버블'은 설탕과 올리브유로 만든 세제다. 기름에 잘 녹는 '친유기' 성분과 물에 잘 녹는 '친수기'로 구성된 '계면활성제'를 올리브유와 설탕을 조합해 대체했다. 계면활성제는 옷감이나 피부의 때를 제거해주는 세제의 핵심 성분으로 그동안 석유에서 추출해왔다.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물을 설탕과 올리브유라는 자연물로 대체한 '슈가버블'은 '무독성, 무자극, 무오염'을 자랑한다. 한국화학시험연구원의 급성 경구독성 시험결과 국제규격 분류표상 '무독, 무해' 수준으로 확인됐다. 경구독성 시험은 실험용 쥐 10마리 중 5마리가 죽을 때까지 먹은 '슈가버블'의 양으로 독성 정도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험 결과 '슈가버블'은 2만ppm으로 소금물 (3000ppm, '저독성')이나 에틸알콜(7000ppm, '무독성')보다 안전한 '무독, 무해' 판정을 받았다. 소재춘 그린케미칼 사장이 방송에 나갈 때마다 '슈가버블'을 몇 통이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이런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기회라도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면 만사지탄(晩時之歎)이지만, 성공한 사람에게는 좀처럼 얻기 힘든 천재일우(千載一遇)가 된다. 소재춘 그린케미칼 사장은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었다. 또 남들이 성공했다 말하는 지금도 또 다른 기회를 위해 달리고 있다. 소 사장이 그린케미칼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한 것은 불혹의 나이 40세가 되던 1998년에 일이다. 외환위기의 한파 속에서 안정적이라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포스코 기술연구소 연구원직을 접고 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머리 희끗한 선배들이 자기 생활도 없이 연구실적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나이가 됐을 때는 나와 내 가족을 좀 더 챙기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 사업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포스코에 던진 사직의 변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당시는 온 나라가 '벤처'를 외치던 시절이다. 이학 박사이자 잘 나가는 연구소의 연구원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한화증권 빌딩의 4층에는 숲이 있다.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도 지저귄다. 그 뿐이 아니다. 피아노도 있고, '사랑을 노래하는 화가' 헤몽페네(Raymond Peynet)의 아름다운 미술작품들도 있다. 각박한 이미지로 인식되기 쉬운 여의도 증권사 건물. 예상외로 한화증권 빌딩에서는 층층마다 아름다운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관점으로 한화증권의 변화를 모색하는 인물이 있다. 취임 2년차를 맞는 진수형 사장이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진 사장은 “과거의 정통적인 경쟁력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힘줘 말한다.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 ‘변화’와 ‘위기관리’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뚫는 것만이 살아 남는 비결이라는 주장이다. 미술작품은 진 사장이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과거 진 사장이 독특한 관점으로 추진한 사업들이 최근 들어 속속 빛을 발하고 있다. 투신업계에 몸 담던 시절, 그는 지금의 민간자본유치사
국내 금융시장의 '메카'로 불리는 여의도. 그 중심에 우뚝 솟은 한화증권 빌딩은 시원한 통유리로 여의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한화증권 빌딩이 '여의도'하면 떠오르는 몇 안되는 상징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 증권업계에서 한화증권의 위상은 빌딩에 비하면 초라했다. 제조업 그룹의 계열사여서 '순발력'이 떨어지고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그룹사 '이름값'도 못한다는 비아냥은 이제 옛 말이 됐다. 최근 1년간 한화증권은 시장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증권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변화'를 꿈꾸며,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강소(强小)'증권사. 진수형 한화증권 사장 취임 1년 후 달라진 한화증권의 이미지다. ―2005년 11월 취임하신 후 정확이 1년이 지났습니다. 스스로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화증권의 '변화'에 역량을 쏟아부었고, 어느정도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관리만 잘한다'는 이미지, 주식중개업무(브로커리지)에
대한전문건설협회 제8대 신임회장에 취임한 박덕흠 회장(53)은 솔직하고 담백하면서도 신념과 의지가 굳은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충북 옥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지만, 더 큰 꿈을 위해 건설업에 진출, 업계에선 입지전적인 성공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의 부단한 노력과 일에 대한 열정은 정평이 나있다. 서울산업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건설에 대한 전문지식을 위해 석사에 이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만학도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산업대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승마, 레이크보드, 스키, 골프 등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광'이다. 최근 3년여간 서울시협회장을 맡으며 운동을 통한 여가활동이 줄었지만, 여전히 건강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 깊다. 이런 박 회장이 오래 전부터 사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다. "사회봉사가 별거입니까. 그저 주위의 어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