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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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화공과 출신의 공학도인 한준수 사장은 코오롱유화가 창립된 1976년에 (주)코오롱에 입사했다. 이후 회장 비서실과 일본 도쿄 사무소장을 거쳐 1998년 코오롱유화 전무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12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한 사장은 지난해 CEO로 첫 해를 보내면서 코오롱유화의 30년 연속 흑자를 일궈내는 뜻깊은 기록을 남겼다. 겨울철에는 스키를 즐겨 탄다. 20년 경력 베테랑으로 슬로프에선 젊은 직원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 골프도 280야드를 날리는 장타자로, 핸디캡 12 수준이다. 종교는 불교이며 술은 잘 하지 못한다. ◇ 한준수 코오롱유화 사장 약력 1950년 10월 경북 구미시 출생 1969년 2월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4년 2월 한양대학교 화공학과 졸업 1976년 7월 ㈜코오롱 입사 1992~1997년 ㈜코오롱 일본 도쿄 사무소장 1998년 11월 코오롱유화 전무이사 2005년 12월 코오롱유화 대표이사 사장
"기업이 30년간 흑자를 낸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죠. 30년 흑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그만큼 무겁고 부담스럽습니다. 좋은 기업을 경영하는 게 행운이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크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하지요" 코오롱유화는 1976년 설립된 이후 지난 30년간 한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는 코오롱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한준수 사장은 2005년 12월 사장으로 승진해 코오롱유화의 30년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원화강세와 고유가로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목표한 경영실적은 무난히 달성했다. 한 사장은 "성장을 위해 올해 2~3건의 신규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라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연관 사업 부문에서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한준수 코오롱유화 대표이사와의 일문일답 -30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내실있고 안정적인 경영에 힘써 온 결과입니다. 한눈 팔기보다 핵심 분야에 역
김우석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 사장(사진)에게 2007년은 여러 모로 뜻깊은 한 해다. 47년생 '돼지띠 CEO'인 그에게 600년 만에 찾아왔다는 황금돼지해는 새로운 도전의 시기다. 올해 캠코는 글로벌 자산관리회사로의 도약을 꾀한다. 외환위기 이후 근 10년 동안 담당해온 한국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갈음하고 이제 눈을 밖으로 돌려 해외 진출을 선도하는 '선발투수'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경북 영양 출신인 김 사장은 영양고와 건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 재학 중 제1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수재였다. 장교로 복무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다시 공직의 길로 나서기 위해 제14회 행정고시에 응시, 수석으로 합격한 뒤 국세청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젊은 관료에 대한 요청에 따라 4개월 만에 재무부 사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4년 재무부 산업금융과장과 국제금융국 외환정책과장을 거쳐 94년에는 주일대사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가 글로벌 자산관리회사로의 본격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잠재적 가치가 있는 국내외 자산에 적극 투자하고 알뜰히 관리해 자산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밖으로는 중국 등 부실채권시장에 진출하고 안으로는 가치를 살리지 못했던 국유재산 등을 알짜재산으로 거듭나게 하는 투자금융 활동에 나선다. 나대지였던 대전 월평동 6000여평 중 4000평이 1단계로 캠코 투자를 거쳐 공공복합청사 단지로 탈바꿈 중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단지가 2009년 8월 준공되면 통계교육원, 보훈처, 선거관리위원회가 임대료를 캠코에 주고 입주하게 된다. 김우석 사장 취임 3년째를 맞는 올해 캠코는 중국 부실채권시장 진출에 나서 성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캠코의 변신에는 환경변화와 사업영역 축소라는 엄연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부실채권 정리 등 외환위기로 발생한 부산물 처리와 설거지 업무가 끝나며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만드는 '새로운' 캠코로 거듭나야 했다. 새로
'교각살우'(矯角殺牛) 소의 뿔 모양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작은 흠이나 결점을 고치려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한자성어다. 대한건설협회 권홍사 회장은 최근 당정의 분양가 규제 방안에 대해 이를 빚대어 표현했다. 당정이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나 '분양원가 공개'와 같은 정책적 카드를 무리하게 도입, 시행할 경우 국민들의 기대감만 부풀리고 오히려 실망감을 더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들 규제 방안이 품질이나 공급적 측면 모두를 고려할 수 없는 비현실적 논리라는 게 권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주택시장은 철저하게 시장경제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값싼 주택 공급은 주공·토공 등과 같은 공공기관이 관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분양가 상승에 이은 집값 폭등에 대해 그는 '땅값' 문제를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토지비 상승이 가격 급등의 원인이란 진단이다. 즉, 정부가 각종 개발을 추진하면서 땅값 상승을 부추겼고 근본적
"분양가상한제나 분양원가 공개 도입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실무경력이 있는 건설업계와 시민단체, 국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민 대토론'을 합시다." 새해 벽두부터 전국이 온통 부동산 문제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 중심에는 민간업체들이 공급하는 민간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규제가 놓여있다. 핵심 논제는 '분양가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 여부다. '분양가상한제'에 대해서는 이미 당정이 지난달 중순 협의를 통해 도입키로 확정한 상태다. 시행시기는 오는 9월로 책정해 놓았다. 문제는 '분양원가 공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고분양가를 해결하고 집값을 잡기 위해선 '분양가상한제'와 함께 '원가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맞서고 있다. 당정간 물밑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당정은 오는 11일 고위 당정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매듭지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 건설업계도 그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모든 회사의 경영활동은 현장에서 나와야 합니다. ‘Plan-Do-See’라는 경영과정은 모두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인데요, 현장과 단절된 상태에서 ‘Plan’이 나오면 그건 탁상공론일 것입니다.” SK증권 김우평 사장은 경영진과 현장의 만남이 회사를 유지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경영진은 현장을 알아야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있고, 현장 또한 경영진과 자주 만나야 자신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실행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게 김 사장의 경영방침이다. 이러한 경영방침을 실행에 옮기 듯 김 사장은 정기적으로 지점을 방문해 구성원들의 애로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중시한다. 또 지난해부터는 경영진과 사원들간의 ‘포장마치 간담회’를 갖고 직원들 입장에서 좋은 영업환경을 만들기 위한 의견을 기탄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하고 CEO 입장에서는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김 사장은
"전세계에서 카지노와 스키장을 함께 갖고 있는 곳은 강원랜드가 유일합니다." 조기송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12월8일 개장한 스키장 얘기가 나오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 톤도 높아졌다. 학자다운 차분한 면모는 이내 열정적인 CEO의 얼굴로 변했다. 카지노업체 강원랜드에 입성한 지 8개월째. 조 사장은 강원랜드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는다. "더이상 나빠질 이미지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조 사장 취임 후 전략도 '방어'에서 '공격'으로 변했다. "있는 그대로만 알려도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란 자신감이다. '도박' 이미지를 벗고 스키장에 이어 종합레저타운을 꿈꾸는 그와의 만남은 강원랜드를 향한 '오해 풀기 과정'이자 '미래 찾기'였다. ―강원랜드에 대해 '오해'도 많은 것같습니다. ▶많습니다. 도박중독의 주범, 돈세탁의 온상 등 부정적 이미지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오해라는
전북은행 홍성주 행장(사진)에게는 은행권 '최고령 CEO'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1964년 한국은행을 시작으로 40여년 넘게 은행원 생활을 했으니 국내 은행권의 산 증인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최고령'이란 말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정력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CEO인 그에게 '나이'란 생물학적 나이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CEO는 실적으로 말한다'는 경구를 감안하면 '최고령 CEO'보다는 '최우량 CEO'가 차라리 적합한 표현이다. 홍 행장은 1941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만 65세다. 전라북도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1964년 서울대 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7년 외환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브로드웨이 지점장 등 주로 미국과 영국지점장을 지냈고 상무이사 자리를 끝으로 1999년 서울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전북 출신인 홍 행장이 전북은행과 연을 맺은 것은 2001년의 일이다. 당시
전북은행은 주식시장에서 주목하는 몇 안되는 은행 중 하나다. 자산 6조원이 채 안될 정도로 국내 은행권에서 가장 작은 은행이지만 내실은 어느 은행보다 튼튼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올해도 전북은행은 꿋꿋이 '제 갈 길'을 갔다. 무리한 자산 확대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창출과 자산건전성에 초점을 둔 결과 올 3분기에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많고 많은 은행업계의 '골리앗'들이 아닌 '다윗' 전북은행을 주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잘 나가는' 전북은행의 뒤에는 홍성주 행장(사진)의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은행의 성쇠는 홍 행장 취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1년 취임해 2004년 연임에 성공한 홍 행장은 '지역밀착형 소매금융 중심 경영'을 기치로 전북은행을 우량 지방은행으로 탈바꿈시켰다. 홍 행장 취임 직전인 2000년 433억원의 자기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전북은행은 '공적자금' 대신 'CE
조생현 보령메디앙스 대표는 마음 한 구석에 빚이 있다. 아기들로부터 돈을 버는 회사의 대표이기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해외 입양길에 오르는 아기들을 보면 맘이 편치 않은 것이다. 올해 초에는 입양가는 아기들이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지내는 곳을 조금이나마 꾸며주고 싶어 홀트아동복지회관에 아기방을 새로 꾸미기도 했다. "우리와 피 한방울도 안 섞인 홀트가(家) 사람들이 우리 아기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뿐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도 조금이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보령메디앙스는 국내 입양에도 앞장서고 있다. 우리가 낳은 아기를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이를 위해 홀트아동복지회와 손잡고 육아용품 지원 등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또 구순열이나 구개열 등 선천성 기형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특수 젖꼭지를 무료로 배포하는 사업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아이맘 가이드북 베
"하루에 직원 3사람을 무조건 칭찬하고 주 1회는 현장에 나가 결재를 합니다. 또 한달에 한 번은 회사 밖 호프집에서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연 매출 560억원이던 보령메디앙스를 취임 3년 만에 1000억원대 회사로 키운 조생현 대표의 말이다. 직원들과, 또 고객들과 함께 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고민하던 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람회나 설명회에서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산모에게 '왜 그 제품을 쓰는지' 물어보면 보령메디앙스가 개선해 나갈 방향이 절로 보입니다. 마케팅이 중요한 소비재 시장에서 고객과 함께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보령메디앙스가 저출산의 시대에 고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결혼해 아이 한 명을 낳는 저출산 시대는 유아용품 회사 입장에서 이만저만 힘든 상황이 아니다. "보령메디앙스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110만명이 넘던 고객(신생아)이 이제는 50만명에 불과하다"는 조 대표의 말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