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총 1,446 건
코스닥 시가총액 1위 바이오기업 셀트리온은 그동안 기다려온 임상 종료 소식을 전하기 직전 각종 루머와 뒤이은 공매도로 주가가 급락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셀트리온은 일부 외국계 투자자의 대규모 공매도가 이뤄지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임상실패설, 분식회계설 같은 루머들로 홍역을 치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셀트리온제약 본사에서 만났다. 서 회장은 약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셀트리온은 미래성장을 위한 준비가 돼 있으며, 외국계 투자자들도 그 의미를 파악해 새로운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와의 인터뷰의 상당부분은 공매도문제와 소액주주들의 피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셀트리온에 공매도가 집중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공매도라면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루머를 퍼뜨리고 시세를 조작하고 불공정한 거래를 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죠. 사실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내려도 큰 피해가 없어요. 하지만 소액주주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니 이번에 유로존 재정위기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소기업들이 자금압박에 처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다시 한 번 이들이 기댈 곳은 신용보증기금(신보)다. 신보는 정부와 금융기관의 출연금을 재원으로 중소기업의 대출을 보증하는 정책금융기관이다. 사업성은 있지만 담보 부족 등으로 대출이 어렵거나 금융위기로 은행들이 돈줄을 죌 때, 신보의 보증 덕에 기업들은 돈을 빌린다. 신보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9년 사상 최대인 46조9000억 원의 보증을 지원해 중소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끄는 소방수 노릇을 했다. 안택수 신보 이사장은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서 신보의 역할과 중요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 해"라며 "신보는 명실상부한 금융위기 극복의 1등 공신"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보는 중소기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혁신에도 나섰다. 먼저 보증여부를 결정할 때 과거 실적 중심이 아닌 미래 성장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심사방식을 개선했다. 옥석을 가려 유
"대학구조개혁은 절대 일시적인 소나기가 아닙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50, 사진)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모 야당 의원으로부터 '내년 총선 출마 여부'를 강하게 채근 당했다. "출마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여러 번 답했지만 의심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7년의 짧은 기간 동안 국회(17대), 청와대(교육과학문화수석), 정부(교과부 차·장관)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견제대상에 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현 정부 대학구조개혁을 '일시적인 소나기'로 보는 시각도 일부 있다. 장관이 총선에 차출되면 구조개혁도 흐지부지 되지 않겠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장관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부라도 가까운 미래에 닥칠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도 대학구조개혁에는 강하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교대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모 총장으로부터 대학가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시절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서울대 교수)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 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을 지냈다. 노동경제학(인적자원개발) 전공을 살려 교육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의 성실함으로 2007년 대선 무렵에는 한나라당의 교육공약을 총괄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간사를 지낸 뒤 18대 총선 출마를 준비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부탁으로 청와대(초대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정국의 유탄을 맞고 물러났다. 연구실로 복귀하며 날개가 꺾이는 듯 했지만 이듬해 1월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에 임명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8월에는 만 49세의 젊은 나이로 장관에까지 올랐다. 집권여당의 교육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만큼 정책 추진에는 거침이 없었다. 교육정보 공개, 학업성취도평가 전수 실시, 사교육비 경감, 입학사정관제
- 매년 6.8조원 R&D투자···美 특허 18년 연속 1위 - 아모레퍼시픽 100개 있으면 한국경제도 강해질 것 - 한국IBM, "어떤 위기에도 공채 포기 안해···우수 인력 수출만이 살길" 언제부터인가 언론의 글로벌 IT기업을 대표하는 자리는 구글, 애플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은 더 심하다. 아예 '국내 진출한 유명 다국적 IT기업'의 표제에 이들 기업을 앞세우며 이들의 현재 모습을 국내 진출한 다국적IT기업 평가의 준거틀로 삼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100년 된 기업이 있다. 특허등록은 미국에서 18년 연속 1위를 차지한다. 2010년 한해 등록건수는 5896건. 마이크로소프트(MS), HP, 오라클, EMC, 구글이 출원한 특허를 합한 숫자보다 많다. 노벨상 수상자도 5명이나 배출했다. 바로 IBM이다. 한국IBM이 우리나라에 진출한지 올해로 44년이다. 매출 1조3000억여원, 일찌감치 직장탁아소를 운영하고, 장애인도 고용한다.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김수홍 인천대교㈜ 대표와 영종도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김 대표는 일종의 사명이라고 표현한다. 김 대표의 선친은 유명한 건축가다. 김 대표의 선친은 판문점 '자유의집'을 설계했고 공군 초대 시설감이자 서울공대 교수를 역임했다. 자유공원에 있는 '팔각정'을 기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1960년대 선친이 영종도와 인천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기 위한 제안서를 만들어 당시 인천시장에게 제출한 것을 회고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산됐지만 선친의 꿈이 아들인 자신에게 전달된 것같다고 말한다. 인천대교 기획부터 완공까지 주도한 김 대표지만 그의 전공은 건축·토목엔지니어가 아닌 사진과 상업미술을 전공한 아티스트다. 그는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최고를 지향하고 남들과 특화되거나 차별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의 기질이 지금의 인천대교를 만든 원동력이 된 것같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의 공식 직함은 인천대교 투자자인 영국의 유력 엔지니어링기업 에이맥(AMEC와 관련이 있다. AMEC
인천대교 김수홍 사장은 이 같은 성과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지구에 비해 개발이 더딘 영종지구의 도시발전을 위해서라도 통행료를 내리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며 인천대교 통행료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통 2년 만에 통행료 인하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천대교의 1차 목표는 대한민국이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는데 일정 역할을 하는 것이었고 실제 인천경제자유구역 탄생에 인천대교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인천대교가 완공되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됐습니다. 바로 '통행료'입니다. 도시가 완성돼 발전하는데 비싼 통행료는 걸림돌이 됩니다. 인천대교가 송도와 영종도의 자산가치를 높이는데 많이 기여했지만 앞으로 더 발전하는데 통행료가 동맥경화 역할을 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행료 인하 또는 무료화 방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현재 영종도 땅값은 송도의 30~40%에 불과하지만 통행료가 인하되면 영종도는 최대 100조원 넘는 자산가치 상승이 가능해집니
정성균 보루네오가구 대표는 4년 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2007년 전문경영인으로 인천 남동공단 본사를 찾았을 때, 회사라고 할수도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그는 "온갖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건물 뒷편에 가면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면서 "사무실은 담배냄새로 찌들어 있어 과연 일을 할수 있는 직장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16년간 법정관리 상태에 있던 상황이라 관리가 엉망이었던 탓이었겠지만 그만큼 직원들의 패배의식이 젖어있었던 때였다. 정 대표가 가장 먼저 한일은 쾌적한 근무환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사무실 내에선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했고 정 대표 스스로도 아예 담배를 끊었다. 직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회사 안팎을 청소를 하면서 함께 산책로도 만들었다. '보예원'이란 산책로는 직원들이 식사 후 또는 퇴근 후 가장 즐겨찾는 명소가 됐다. 울퉁불퉁한 공장 바닥은 다시 깔고 내부 벽은 화사한 색으로 다시 칠하자 직장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
"내년부터 누적적자를 모두 털고 법인세를 정식 납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주배당도 검토할 수 있겠죠." 지난 14일 인천 남동공단 본사에서 만난 정성균 BIF보루네오가구 대표(53·사진)는 내년부터 완전히 회사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달 임시주총에서 정식 대표이사로 선임된 정 대표의 표정은 밝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1966년 설립된 BIF보루네오가구는 70~80년대 국내를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로 성장했으나 대규모 시설투자 후유증 등으로 1992년 부도를 맞았다. 이후 16년간 법정관리와 위탁경영을 받아오다가 2007년 건설사 거성산업건설 대표인 정복균 회장이 인수했다. 이 때 경영정상화의 구원투수로 나선 사람이 전문경영인인 정 대표다. 그는 인수 첫해부터 보루네오의 실질적인 대표를 맡아 부실을 털어내는데 주력했다. 지난 4년간 혹독한 내실경영을 통해 4년 연속 혹자행진에 성공하면서 올해 드디어 법정관리 기간에 누적된 750억원의 적자를 전부 해소하기에 이르렀
# "우리는 99퍼센트다!(We are the 99%!)" 지난 15일 토요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미국 맨해튼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반(反) 월가 시위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이다. 이들은 금융 자본의 탐욕과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열렸다고 밝혔다. 사실 이번 시위는 미국 뉴욕에서 소수의 청년 실업자들로부터 촉발됐다. 이들은 "99%의 시민들이 1%도 채 되지 않는 월가의 탐욕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금융시장 역시 세계적 금융투기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또 고용불안의 원인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본주의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왜 취업 현장이 아닌 길거리로 나오게
우리 산업구조 변화에 발맞춰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도 지원체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조석 산단공 이사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산단공 주요 사업을 정리한다. ◇QWL(Quality of Working Life) 밸리 조성=산업단지의 기반시설 및 근로자의 복지·편의시설을 확충해 입주기업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근로자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단지 자체의 경쟁력도 높인다는 판단에서다. QWL 조성은 우선 4개 국가산업단지인 △반월 시화 △인천 남동 △구미 △익산에서 시범적으로 추진한다. 사업 기간은 2013년 상반기까지다. 예상 사업비는 총 1조2608억원으로 산단공이 8178억원, 지방자치단체가 2107억원을 마련하고 민간에서 2322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산단공은 주거 및 체육시설 등을 조성하는 일을 맡고, 지자체는 공원을 만들거나 하천과 도로를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민간에선 오피스텔을 짓거나 주유소 등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둔다. ◇
조석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55, 사진)은 지난 8월 4일 취임했다. 산단공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꾸준히 공직에 있었다. 그는 지난 1981년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대통령 외교안보비서실과 경제비서실을 거쳤다. 외교와 안보, 산업과 경제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 2004년부터 2년간 산업자원부에서 원전사업기획단장을 맡을 때 최초로 주민투표 방식을 도입해 경주방폐장 부지 선정에 성공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19년간 해결하지 못한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지난 2006년부터 2년간 산업자원부 에너지정책국장을 지냈다. 이 때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고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발족하는 데 역할을 했다. 기후 변화 시대를 맞이해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산단공 이사장으로 오기 전까지 지식경제부에서 근무했다. 산업정책국장, 성장동력실장 등을 거쳤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