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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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한 세월에 줄 그어 이쪽저쪽으로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 여하튼 올해도 마무리되고 있다. 헌데 이쯤이면 대체로 그러하듯 필자도 상념에 빠져든다. 본인 역시 많은 기대와 욕심을 갖고 시작했던 올해를 여러 아쉬움을 남기고 넘기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하나씩 더해지는데 따른 초조함으로 인해 아쉬움도 커져 간다. 해서 이런 아쉬움을 떨치려고 항상 현재 상황과 수준에 만족하여야 한다고 되뇌는데, 이렇게 하면 다소나마 마음이 편해진다. 올해 주식시장도 입회일 기준으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연말까지는 주식시장 상황이 현재에서 그렇게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은데, 때문에 올해 투자성과는 다소 편차가 있겠지만 현재 수준 내외에서 마무리 될 듯하다. 이와 관련 올해 주식시장을 평가하면 주가지수가 지난해 말 1825에서 12월 18일 현재 1993으로 9.2% 상승했기에 그런대로 안정되었다고 하겠다. 특히 국내외적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은 상황을 원만하게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하면, '웬 2만 불 타령'이냐는 힐난을 듣기가 십상이다. 나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보니, 감흥 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중산층조차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냐'는 냉소만 돌아올 뿐이다. 경제성장은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전제조건이 된다. 성장 없이 삶의 질이 개선되리라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성장이 곧 삶의 질의 개선으로 연결되느냐 하는 것이다. 성장이 삶의 질을 개선하리라는 생각의 너머에는 '스필오버 효과'(spill over effect)에 대한 믿음이 있다. 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흘러내리면서 사회 전반이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성장의 스필오버 효과가 목격되었고,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의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믿음이 흔들리
최근 대기업과 중견기업 간부들과 가진 모임에서 대선 이후 정치권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체감할 수 있었다. 특정 후보가 당선이 되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비상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준비파부터, 누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대기업을 손 볼 것이라는 등 근거가 불분명한 루머들이 나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난감하다는 걱정파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우려들을 쏟아냈다. 또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다루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위원들끼리 걱정하며 나눈 말들도 예사롭지 않다. 기업이 어렵고 내년도의 경기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혹시 내년에 노동위원회에서 다루어야 하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크게 증가하지 않을까라는 불안한 예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매니지먼트 에디터인 울드리지(Wooldridge)는 경영이론이 모든 사회를 풍미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이유로서 매니지먼트 이론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민주화'를 두고 말이 많다. 정체불명이라는 주장부터 헌법의 기본 이념을 선언한 전문(前文)의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가 곧 경제민주화를 의미한다는 주장까지 매우 다양하다. 헌법의 특정 단어가 이리 논란이 많다면 작지 않은 문제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헌법은 어느 누구나 이해에 어려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경제학에서나 일상적으로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어서 그 유래가 궁금해진다. 경제민주화는 1948년 근로자 보호와 토지개혁과 관련하여 시작되었지만 419혁명 직후 부정부패 해소와 중소기업 보호(1960년)와 관련해 사용된 것을 제외하곤 상당히 뜸했었다. 이후 경제민주화가 널리 회자된 것은 1986~89년경으로 모든 이해집단이 정부주도와 불균형 성장 전략에서의 탈피를 요구하며 경제민주화를 요청했고, 결국 헌법에도 자리를 잡았다. 경제민주화는 외환위기 이후 다시 부상하는데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주된 주제였다. 가장최근의 논의는 익히 아는
지난 주말에는 좋은 가을날의 산행을 했다. 붉게 물들은 산에서 구름 몇 점 떠도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짙푸른 빛깔의 맑은 산골짝 물에서 졸졸 소리 듣는 것은 가을에만 맛볼 수 있는 정취이었다. 또한 선선한 공기와 엷게 스쳐가는 가을바람은 나를 은근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빠지게 했다. 더구나 곁에는 막걸리도 한통 있으니 이만한 만족을 어디서 찾을까 싶다. 실로 이러한 가을 날 오후는 살랑거리는 봄바람 속의 따사로운 봄볕 같이 필자에게 여러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러한 만끽도 잠시, 현실로 돌아와 주 업무인 기업실적과 경제수치를 챙기다 보면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상반기 상장기업들의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5%나 줄었고, 올해 3분기 성장률 1.6%로 떨어진 점에서 보듯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이후 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우리 경제가 그간 겪어보지 못했던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은 언제 경기가 회복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경기가 위축될 것인가에 대한 지루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의 장기적인 상승과 하락을 전망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표는 결국 경제활동 수준, 곧 경기 상황으로 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낙관론자의 승리'를 저술한 저자들은 100년 동안의 수익률 분석을 이용하여 경제성장률과 주가 상승률 간에 장기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이러한 분석 결과가 실제 투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음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에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주식투자의 수익이 판가름 난 뒤 알게 되는 경제성장률은 주식 투자자에게는 무용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들은 과거의 경제성장률이 미래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까지도 쿨하게 지적한다. 과거 20-30년간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국가의 주식을 투자했을 경우에도 그 미
우리는 냉장고나 TV와 같은 내구재를 살 때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한번 사면 싫던 좋던 장기간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고가라서 다시 사는 것도 싶지 않기 때문이다. 냉장고나 TV를 사는 일도 이런데, 하물며 주택을 구입하는 일은 말할 나위가 없다. 주택의 경우 가격도 가격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딱 그런 조건을 갖춘 주택을 찾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향은 좋은데 층수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향과 층수는 모두 마음에 드는데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에 딱 들지는 않지만 가격이 그럭저럭 적당한 주택을 발견하게 되면, 사람들은 망설이게 된다. 좀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좀 더 싸고 마음에 드는 주택을 찾으러 돌아다닐 것인지, 아니면 그냥 계약을 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을 하게 된다. 시간을 두고 기다릴까 싶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 매물이 나가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주택을 팔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존재한다. 어떤
현재 대선 정국 속에서 단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대기업의 개혁에 관한 공약이다. 각 대선후보들은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기업 특히 재벌에 대한 규제를 더욱 더 강화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생각을 함께 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러한 개혁의지는 대기업이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토대가 된 경제발전에 기여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사회의 양극화나 승자독식의 현상을 확대하는데도 책임이 있다는 우리 국민의 복합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기업에 대한 점증하는 비판은 어쩌면 전 세계 어떤 국가도 보여주지 못한 한국의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그늘일 수 있다. 물질적 생활의 향상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가치에 전념하였던 성장 중심의 시대의 주요 행위자였던 기업에게는 어쩔 수 없는 원죄며 업보일지도 모른다. 대선 후보들의 과거 행적에 관련된 논란들이 대선정국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당분간은 경기가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지난 2분기에 OECD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성장률이 둔화되었고, 앞으로 수분기 동안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다. 이들 국가들의 경기선행지수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기는 오리무중이다. 주요 기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의 하향 조정이 거듭된 지 오래이다. 작년말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상승 반전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도 현장의 경기는 더 싸늘해져만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경기선행지표가 선행성을 상실한 것이다. 왜 그럴까? 경제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계경기의 부진도 한 몫 했겠지만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주요 연구소들은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올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근거는 너무도 모호하다. 도대체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경제성장률을 넘어 국민경제의 전체적 양상을 읽어내는 한 방법이 대내적 균형과 대외적 균형, 즉 거시경제
이웃과 어울려 오순도순 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데, 이 부분이 국제 문제로 들어가게 되면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현재는 각국 모두가 먹고살기 어려워 좀처럼 양보하지 않을 듯하다.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난다 했는데, 지금같이 각국이 높은 실업률, 가계부채로 인해 엉망인 상황에서 상대국가의 양보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 무리라 여겨진다. 우리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 요즘은 덜하지만 신문 1면에 매우 잘하는 삼성전자, 훌륭한 현대차란 기사가 자주 실렸다. 많은 수출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기사이다. 그러나 신문 2면에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외제자동차가 많이 수입되다니 큰 일이다란 논조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내 것은 팔아야 하겠는데, 남의 것은 사주기가 좀 꺼림직 하다란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것이라 하겠다. 외면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국가 간 무역장벽이 엷어졌지만, 앞서 거론한 국가 간 폐쇄 성향이 빠른 시일 내 시정될 것 같지 않다. 실제로 각국은 덤핑제소, 통관지연, 관세부과,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곧 바로 주택담보대출이 전면적으로 부실화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소구(차주의 다른 자산이나 소득 등을 압류하여 강제로 변제시키는 것)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대출액 이하로 내려간다고 하여 다수의 차주가 채무를 불이행하는 그런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느냐 마느냐의 일차적인 관건은 차주가 채무상환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주택가격이 하락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차주의 채무상환능력이 주택가격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자만 지급하는 단기대출이나 거치기간이 긴 중장기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 이야기이다. 이들은 주택가격이 올라가면 주택을 팔아서 원금을 갚을 생각으로 이런 유형의 대출을 받았는데,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거래가 실종되면서 원금 상환에 난관이 닥친 것이다. 일부는 미래의 소득이
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유명 외국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대단히 미미하다는 지적이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연이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비판의 대상은 구두 가방 등 이른바 명품을 판매하는 기업, 자동차 업체, 은행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많은 매출과 이익을 올리는 외국계 기업을 거의 다 망라한다. 비난을 받고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자신의 본국에서 혹은 전 세계적으로 행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비판이 단순히 국수주의적 반외국계 정서가 아닌 사실에 기반을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판대상 기업 중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잘 한다고 하는 몇 개 기업의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 명품 매출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루이비통의 경우 루이비통의 모회사인 LVHM의 최고경영자인 베르나르 아노는 작년 우드로윌슨 국제학술센터가 수여하는 기업시민상을 수상할 정도로 기업 사회적 책임의 업적을 인정받을 정도이다. 구찌의 모회사인 PPR은 그린피스나 뉴스위크지 등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