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살 된 어린 아이는 숨바꼭질을 할 때 자기 눈만 가리면 상대방이 자신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고방식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17~18일 열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의 재판은 마치 어린 아이 숨바꼭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검찰 진술을 번복하며 시종일관 엉뚱한 답변을 늘어놨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국정원에서 근무한 정예 요원인 이들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트위터 계정, 하루 일과 등을 묻는 검찰의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검찰 조사 때는 윗선의 지시를 받아 트위터 활동을 했다고 털어놨지만 법정에서 "그렇게 장황하게 말했다면 나는 거의 천재다. 나는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
심지어 "당시 검사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로 겁을 먹었다"고 엄살을 부리는가 하면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내가 내가 아니다. 혼은 다른데 가 있다"고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듣다 못한 재판장이 "검찰 조사 당시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질문에 맞는 답변을 하라"고 쏘아붙일 정도였다. 재판장의 지적에도 이들의 '모르쇠' 답변은 변하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방청석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날마다 이슈와 논지를 시달받아 업무를 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도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허술한 변명으로 답을 피하려는 뻔뻔함이 도저히 국정원 요원의 태도라고 볼 수 없었던 탓이다.
검찰과 재판부, 방청객이 다 아는 사실을 자신들만 모른다고 발뺌하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의 숨바꼭질 놀이와 닮았다. 그 바탕이 아이의 순수함이 아니라 가식이라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직원 모두가 합심해 '원세훈 구하기'에 나섰지만 오히려 비웃음을 자초한 꼴이 됐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 직원들의 유아적인 변명은 서울시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일견 수긍이 간다. 문서 위조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시점에서 댓글조작 사건에서나마 발뺌을 할 수밖에 없는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말이 안되는 말을 하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달리 '언제나 진실된 정보만을 추구한다'는 원훈을 가진 국정원 직원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