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량·흙물 든 신발·비료포대…초라한 유병언의 마지막

비상식량·흙물 든 신발·비료포대…초라한 유병언의 마지막

신희은 기자
2014.07.23 11:17

유병언 시신 발견 장소부터 신체, 유류품까지 "눈여겨 봤더라면 충분히 인식 가능" 비판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정밀 분석을 위해 국과수로 이송된 22일 오전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연구소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정밀 분석을 위해 국과수로 이송된 22일 오전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연구소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40일만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경찰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유 전 회장 시신이 발견된 곳이 한 때 은신했던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지척인데다가 그의 신체적 특징과 유류품들로 신분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는데도 '단순 변사 사건'으로 치부한 때문이다.

유 전 회장 시신은 지난달 12일 오전 9시6분쯤 순천시 서면 학구리의 매실밭에서 주인 박모씨(77)에 의해 발견됐다. 박씨는 발견 즉시 "허름한 행색으로 봐서 노숙인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순천서 강력팀과 과학수사팀, 서면파출소 직원 등이 현장에 출동해 검시했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행려병자'의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고 신분확인을 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해 39일만에 유 전 회장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유 전 회장의 도피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과 시신 발견 장소, 신체특징, 유류품들을 조금만 눈여겨보고 알아봤더라면 조기에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정황증거'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지난달 12일 발견된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여름인데도 벙거지 모자와 상하의 내복, 상의 스웨터와 패팅 점퍼까지 착용한 채로 80% 이상 부패한 반백골 상태였다. 발견 장소는 검찰이 지난 5월 25일 급습했다 간발의 차로 놓쳤다고 발표한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불과 2.3km 거리다. 인근엔 구원파가 보유한 부동산들도 밀집해있다. 차림새나 장소를 봤을 때 유 전 회장의 야산 도주 가능성을 충분히 산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발 머리카락으로 고령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고 160cm 초반에 불과한 작은 체구는 시신 부패와 무관하게 추정이 가능했다. 경찰은 당초 유 전 회장 수배전단을 배포하면서 키를 165cm로 명시했지만 이후 법무부 수감 기록을 확인해 160cm로 눈에 띄게 작다고 정정했다. 경찰은 이 같은 정정을 일선서에 모두 통보했다고 밝혔고 유 전 회장의 핵심 은신지역이었던 순천 일대 경찰들이 이를 몰랐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일부 절단된 손가락은 부패가 진행돼 확인이 어려웠을 수 있지만 금니가 10개나 있었던 것도 '행려병자'로 보기엔 석연찮은 부분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기독교침례복음회(구원파)의 계열사 '한국제약'이 제조회사로 명시된 길이 8.5cm 가량의 'ASA스쿠알렌' 1병도 핵심 유류품이다. 유 전 회장이 즐겨 복용하는 것으로 추적 당시부터 알려져 있던 제품이다. '꿈같은 사랑', '글소리'라는 글자가 앞뒤로 새겨진 천 가방도 있었다. '꿈같은 사랑'은 유 전 회장이 쓴 자서전이자 설교집으로도 사용되는 구원파 대표 서적의 제목이다.

평소 안경을 착용하는 유 전 회장 주변에 안경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직사각형 모양의 파란색 돋보기가 있었다. 상의 점퍼 안쪽엔 접어진 유기질 비료포대 1개가 있었는데 서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바닥에 깔고 잠을 청하거나 하는 목적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시신이 입고 있던 점퍼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고가의 이태리 브랜드인 '로로피아나' 제품으로 밝혀졌다. 로로피아나는 캐시미어, 울 소재 전문 브랜드로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입어서 유명세를 치른 맞춤 정장은 세계 5대 정장 중 하나로 손꼽히며 한 벌에 수천만원대를 호가한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점퍼는 200~300만원대, 겨울 코트는 1000~2000만원대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점퍼 주머니에선 육포 2봉지와 콩 20개도 나왔다. 도주 과정에서 비상식량으로 부피가 적어 소지가 용이하고 에너지 보충이 가능한 식품들이다.

반면 신발은 당초 경찰이 명품 브랜드 '와시바(Waschbar)'로 발표했지만 독일어로 '세탁할 수 있는'이라는 뜻의 안내문구 '바슈바르'를 오해한 것이라고 전날 정정했다. 실제 일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가 독일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합작해 만든 와시바(Washiba)라는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값이 그리 비싸지 않고 명품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신발은 흙물이 들어 있어 오래 걸었음을 시사했다.

유 전 회장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의문의 유류품들도 있었다. 천 가방 안에서 빈 소주병 2개와 순천에서 제조된 빈 막걸리 1병도 나왔다. 소주병은 보해골드 제품으로 2003년 2월 출시됐고 현재는 생산이 중단돼 시중에서 구입하기 어렵다. 유 전 회장이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야산에서 주워 물병 대신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도피생활 중 스트레스로 음주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유 전 회장 시신 발견 초동대처를 둘러싼 여론이 악화되자 22일 순천경찰서장과 담당 강력과장을 전격 직위해제하고 과학수사팀 관련자들도 전원 감찰토록 했다. 시신을 발견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총체적으로 부실한 수사가 진행됐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경찰은 순천서에 전남지방경찰청 1부장을 수사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 유 전 회장의 행적과 사망원인 규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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