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미래 없다? 코리아 난민③] "사회안전망 부실하고 정서적으로 각박해진 탓"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모씨(74)는 1991년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의 팍팍한 삶을 끝내기 위해, 호주에서 좀더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민생활도 만만하진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불편은 물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떨치기가 어려웠다. 아내는 밤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괴로워했다. 이민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큰 아들은 견디다 못해 몇 개월 만에 홀로 한국으로 가버렸다.
그럼에도 이씨는 청소노동자로 일하며 악착 같이 버텼다. 아내와 작은 아들도 같은 일을 하며 이씨를 도왔다. 밥벌이를 찾고 영어로 대화하는 게 입에 붙으니 세 식구는 차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이민 10년차인 2000년부터는 향수병도 거의 사라졌다. 25년차가 된 2015년 현재, 이씨는 "이제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1일 이씨는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나이가 되면 고향땅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그런 마음이 싹 가신다"고 전했다. 그는 "이 곳이 노후 복지 등 사회안전망이 비교적 잘 갖춰져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정서적인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민생활이 인종차별 경험 같은 단점도 있지만 한국은 그보다 더한 학력, 지역, 성, 직업 차별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특히 이민을 떠났던 20여년전 당시보다 더 각박해지고 더 돈만 밝히고, 더 경쟁에만 내몰리는 한국 사회를 보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분노 범죄 같은 황당한 서울발 뉴스를 볼 때마다 과거에 그나마 살아있던 우리 한국인들만의 정은 이제는 정말 옛 이야기가 됐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며 "경제적으로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정서적으로는 혼란스러우니 삶의 질은 25년전보다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씨 사례처럼 '탈(脫) 한국' 현상은 젊은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년간 이민생활을 한 후 여생을 고향 땅에서 보내려는 노년층 사이에서도 한국 기피 현상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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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 내 소득 상위 10%의 평균 소득은 하위 10% 평균 소득의 10.1배로 OECD 평균인 9.6배에 비해 높다. 과거 1980년대 7배, 2000년대 9배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노인 빈곤율이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인 12.6%을 훨씬 초과해 회원국 가운데 제일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노년층이 한국에서 살기 팍팍한 상황에 더해 한국사회가 정서적으로도 황폐해졌다는 현실이 해외에 나가 있는 고령의 이민자들로 하여금 귀국을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제로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에 집중하느라 정서적으로 각박해진 면이 있다"며 "이제는 과거의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재건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