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일산서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

지난 1일, 30대 A씨는 부산의 한 PC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고가의 텐트를 판다는 글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PC방 입구에 다다른 순간 누군가 A씨의 이름 부르며 어깨를 잡았다. A씨는 본능적으로 "내가 아니다" "내 동생 이름이다"며 뿌리쳤지만 주머니에선 그 이름이 적힌 신분증이 나왔다. 그리고 금팔찌를 두른 A씨 손목엔 수갑이 채워졌다.
A씨는 유명한 중고거래 사기꾼이었다. A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숨어지내며 사기행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도 그가 쓰려 했던 텐트 판매글은 '사기'였다. 그는 미리 '상품권 판매자'에게서 계좌번호를 얻어내고, '가짜 텐트' 판매 대금을 그 계좌로 받으려 했다.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상품권 판매자에게 그 돈을 환불 받는 방식이다. '삼자사기'로 자신의 계좌를 쓰지 않아 흔적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을 뒤쫓은 사람이 있었다. 15년 경력의 베테랑 김규환 일산서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이다. 사이버수사만 8년을 했다. 김 팀장은 A씨를 잡기 위해 부산까지 따라가 하루를 꼬박 차에서 잠복한 끝에 A씨를 검거했다. A씨를 붙잡은 며칠 뒤 그의 공범 동네 후배 20대 B씨는 인천에서 붙잡았다.

김 팀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접수된 5건의 온라인 중고거래 사기가 모두 동일한 주범 2명 짓임을 파악했다. 이들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값비싼 수입 캠핑용품을 싸게 판매한다고 글을 올리고 대금만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8개월간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의심하며 물품과 함께 손글씨 인증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물품 사진에 손글씨를 합성했다. 택배 송장번호를 요구하거나 무게 달아보라고 요청하는 피해자에겐 택배상자에 돌을 넣어 보내기도 했다.
검거 후 여죄를 확인하니 최초 사기행각은 지난해 7월 시작됐다. 지난달까지 8개월간 총 130여명이 이들 사기에 당했고 피해금액은 1억5000여만원에 달한다. 김 팀장은 팀원들과 범행에 사용된 계좌 60개와 전화번호 40개를 분석하고 끈질기게 좇았다. 사기 물품의 액수가 컸던만큼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고 싶었다.
김 팀장은 중고거래 사기가 점점 지능화, 조직화, 광역화하고 있다고 했다. A씨와 B씨처럼 역할을 나눠 사기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김 팀장은 "계좌를 수사하면 과거엔 거의 범인 개인 계좌였다면 요즘은 대부분이 대포통장"이라며 "계좌뿐 아니라 인터넷 사기 계정과 전화번호 등도 모두 차명"이라고 말했다. 지역이나 명의가 중구난방이라 동일범 소행 여부 확인과 추적이 쉽지 않다.
김 팀장은 2017년에도 비슷한 사기행각을 3년간 벌이던 범인을 검거했다. 당시 범죄 계좌를 추적한 김 팀장은 피해자인척 해당 계좌로 돈을 직접 보내 이를 인출하러 나타난 범인을 잡았다. 김 팀장은 "다른 계좌로 갈아탈까봐 절박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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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도 파악된 계좌 명의자만 60명이었다. 지인들 계좌를 빌려다 쓰다가 '범죄 계좌'로 신고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삼자사기'로 갈아타기도 했다. 중고 물품 판매자에게 물건을 살 것처럼 연락해 계좌번호를 받고, 자신이 따로 올린 중고 거래글의 피해자에게 해당 계좌로 돈을 보내게 한 뒤 앞선 판매자에게 돈을 환불 받는 방식이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사이버수사팀이 바빠졌다. 김 팀장은 "코로나로 비대면으로 사고 파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사이버사기 신고가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사기 범죄 건수는 2014년 8만9519건에서 2019년 15만1916건으로 뛰었다.
문제는 온라인 사기의 경우 추적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검거하더라도 피해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 팀장이 "사이버범죄는 검거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그 때문이다.
김 팀장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경우 범인이 누군지 못 찾는 미제사건도 많다"며 "그래서 한번 당하면 피해회복이 쉽지 않고 검거되더라도 피의자들이 이미 돈을다 써버린 경우가 많아 돌려받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사기 범죄자들은 언젠가 잡힐 거라면 돈이 있을 때 다 쓰자는 '한탕주의' 면모를 보이곤 한다는 게 김 팀장 설명이다.
김팀장은 "범인들은 피해자 위치를 먼저 파악한 뒤 가장 먼 지역을 이야기해 직거래를 피하니 이런 수법에도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경찰청 사이버캅' 앱으로 사기 연루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검색할 수 있다. 민간에서 만든 '더치트'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은 "앱으로 확인해보니 바로 범죄 계좌라고 뜨더라"며 앱만 확인했어도 사기 안 당했을 거라고 경찰서에서 한탄했다고 한다.
김 팀장은 "경찰청 사이버캅 앱이 더 홍보가 많이 돼 피해를 예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 사이버범죄가 당하는 사람만 당하는 범죄에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당할 수 있는 범죄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재난안전문자 보내듯 온라인 범죄에 대해서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홍보가 적극적으로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