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코로나 그레이존(중)-코로나 2년에 늘어난 '금쪽같은 내새끼들'③
"아이들이 끼니를 못 먹어서 깡말랐는데 수개월이 지나서야 발견됐어요."
코로나19(COVID-19)로 원격수업이 이어지던 2020년 하반기, 미정이(가명)와 소정이(가명)는 아동권리보장원의 도움으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초등학생·중학생이던 미정이와 소정이는 평균 체중에 한참 못 미치는 마른 몸에 눈에 띄게 왜소한 키를 갖고 있었다. 밥과 간식을 주던 학교와 지역 아동센터가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으면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이었다.
한눈에 봐도 아동학대가 의심됐다. 미정이와 소정이는 잔뜩 위축돼 있었다. 상담 내내 의사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미정이와 소정이를 상담한 칠곡경북대병원 정운선 정신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학교가 록다운(봉쇄 조치)된 뒤 아이들이 매일 라면과 인스턴트 식품만 먹은 것으로 추정됐다"며 "지속적인 학대 의심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는데 2020년 하반기 무렵에서야 아동권리보장원에 신고가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아동학대가 '음지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비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감시할 눈은 줄어들면서 학대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쉬운 환경이 형성됐다.

15살 정은이(가명)도 코로나19 이후 엄마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엄마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던 탓에 아이들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원격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던 때라 학교에서도 정은이의 학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정은이가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곳은 학원이었다. 정은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학원강사가 신고하면서 정은이의 학대 사실이 알려졌다.
조사결과 정은이의 어머니는 물건을 던지고 아이들을 때리는 등 지속적으로 학대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정도가 약했지만 학대는 지속됐고 강도는 점차 강해졌다. 정은이의 어머니는 "코로나19로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대에 이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정은이를 상담했던 가정폭력 전문상담사 김모씨는 "학원 강사가 발견하기 전까지 학대가 조금씩 지속됐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아버지는 평일에 외부에 나가 있어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고 원격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던 때라 학교에서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음지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가 매해 발간하는 '아동학대 주요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와 재학대 건수는 직전 2년에 비해 모두 증가했다.
아동학대 신고 접수 건수는 △2018년 3만6417건 △2019년 4만1389건 △2020년 4만2251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재학대 건수도 △2018년 2543건 △2019년 3431건 △2020년 3671건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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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학대를 감시하는 일은 어려워졌다. 가정에서 은밀하게 발생하는 학대는 늘었지만 등교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 교사들이 학대 정황을 발견할 기회는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가정 내'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건수는 △2018년 1만9748건 △2019년 2만3883건 △2020년 2만6996건으로 늘었다. 전체 장소 중에서 가정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8년 80.3%, 2019년 79.5%에 비해 2020년 87.4%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고 의무자에 해당하는 초중고교 직원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 비율은 2018년 19.1%, 2019년 15.4%에서 2020년 9.8%로 대폭 줄었다.

전문가들은 학교·지역 사회와 분담했던 양육 부담이 코로나19 이후 전적으로 부모에게 떠맡겨지면서 가정의 양육 스트레스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이와 동시에 아동학대를 감시할 사회적 장치가 사라지며 음지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는 양육자가 스트레스에 압도된 환경에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과거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와 끼니 등을 챙겼는데 코로나19 이후 이 모든 것이 부모 책임이 됐다. 양육자의 스트레스가 높아져 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직한 가정이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을 부양한 가정은 더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이라며 "사회적 만남이 활발히 이뤄지기라도 하면 아이의 몸을 보고 남들이 눈치챌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겠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선 이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 상담소 '마음치유공간 품다'의 박민서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가 늘었는데 집 안은 정부가 멋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등교 제한으로 사회적 감시 장치까지 제거되면서 아동학대가 음지화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학교와 가정의 연계를 강화하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아동학대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현행법상 아이가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하면 학교 교사가 전화나 방문 등을 통해 아이의 상황을 확인하게 돼 있다"며 "그러나 지난 2년처럼 원격수업을 시행하는 시기엔 늦거나 결석하지 않더라도 아이와 교사가 주기적으로 소통할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감시 조직이 생기면 부모는 사회적 압력을 느껴 마음대로 아이를 학대하지 못하게 된다"며 "아이들도 부모 외에 본인을 보호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시군구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경찰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공조할 필요가 있다"며 "아동학대 발생 가능성이 높은 가정을 미리 파악하고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도 이 가정들의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학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