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뼈대만 남아서 못 돌아가요"…산불 피해 체육관에 남은 아이들

"집이 뼈대만 남아서 못 돌아가요"…산불 피해 체육관에 남은 아이들

안동(경북)=오석진 기자
2025.03.28 10:55
28일 오전 8시쯤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 내부 모습. 대피한 시민들은 의자에 앉아 뉴스를 보고있거나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진=오석진 기자
28일 오전 8시쯤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 내부 모습. 대피한 시민들은 의자에 앉아 뉴스를 보고있거나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진=오석진 기자

28일 오전 경북 안동시 안동체육관 문을 열자 탄내가 가득했다. 구호 텐트 119개 다닥다닥 들어선 체육관 내부의 큰 화면에서는 연신 산불 상황을 전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체육관 한 귀퉁이 마련된 의자엔 일부 대피한 시민들이 앉아있었다. 대부분 침울한 표정이었다. 밤새 잠을 설쳤는지 피곤한 기색도 역력했다. 벽면 스피커에선 "오늘부터 인근 온천으로 차를 대절해 목욕을 위해 마을별로 이동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대피소 안에서 만난 임시후군(11)과 박형준군(11)은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놀고 있었다. 임군은 "친구들이 원래 더 많았는데 집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돌아갔다"며 "우리 둘은 집이 뼈대만 남아서 당장은 못 간다"고 밝혔다.

임군은 "지난 25일 대피소에 온 이후로 어제 처음 집에 처음 가봤는데 소 우리가 많이 탔다"며 "키우던 기러기 '삐삐'랑 닭들이 퍼덕거리며 살아있어서 너무 반가웠는데 소는 세 마리나 죽었다"고 말했다. 이어 "집 안에는 유리창이 깨져 산산조각났고 천장도 전부 내려앉았다"고 했다. 또 "거실에 있는 TV도 전부 깨져있고, 집 현관문 앞에는 화분 등이 쏟아져 있어서 들어가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일곱 가족이 두 텐트에 나눠서 지내고 있다는 임군은 "너무 심심하다"며 "빨리 학교로 돌아가서 친구들이랑 축구, 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 박군도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텐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친구랑 놀거리도 없다"며 "지난번에는 숨바꼭질 도중 텐트 사이에 숨었다가 빠른 걸음으로 다른 곳에 숨으려는데 시끄럽다고 어른들한테 혼났다"고 밝혔다.

28일 오전 대피소에서 만난 A씨가 보여준 집 모습. /사진=오석진 기자
28일 오전 대피소에서 만난 A씨가 보여준 집 모습. /사진=오석진 기자

대피소 한켠에 앉아있던 60대 A씨는 "어제 집을 가봤는데 집이 홀라당 타버렸다"며 "우리 동네는 열 집 이상이 전부 탔다"고 밝혔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A씨는 대피소에서 지원하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너무 화도 나고 슬프고 답답하다"며 "숨도 잘 못 쉬겠다"고 했다. 대피할 당시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고 한다. 그는 "저만치 벌건 불이 보이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뚝뚝 떨어졌다"며 "불이 거리에 기름을 뿌린 듯 굉장히 바르게 번졌다"고 밝혔다.

일진면에서 왔다는 70대 B씨는 "밥이랑 미역국, 고기반찬도 나오고 김치도 나와서 식사는 맛있게 했다"며 "텐트도 널찍하니 잘만하다"고 했다. 그는 "버스를 타고 대피하는데 이쪽 산에만 불이 붙었던 것이 집 뒤까지도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며 "오늘부터는 목욕도 데려간대서 곧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소방관들은 아침 도시락을 먹는 시민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경상북도한의사회는 대피소 내부에 한방진료소를 차리고 무료 진료를 제공했다. 대피소 안에는 무료 핸드폰 충전소도 마련됐고 사람들이 눕거나 앉을 수 있게 곳곳에 돗자리를 깔아뒀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보급되는 크림빵 등을 들고 각자 텐트로 돌아갔다.

28일 오전 안동체육관 대피소 내부 모습. /사진=오석진 기자
28일 오전 안동체육관 대피소 내부 모습. /사진=오석진 기자

경북 안동시에 마련된 안동 체육관 대피소에는 지난 27일 오후 4시 기준 411명이 대피해 있다.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산불 진화율은 △의성 95% △안동 85% △청송 89% △영양 76% △영덕 65%다. 이번 산불로 24명이 사망하고 2412개 건물이 불탔다. 총 대피 인원은 3만6674명이며 이중 3만389명이 귀가했고 6285명은 집에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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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진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오석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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