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기일에서 국민연금 측은 삼성의 불공정한 합병과 정부 압박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고, 이 회장 측은 관련 형사재판에서 이미 위법성과 손해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정용신)는 19일 국민연금이 이 회장과 삼성물산,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 9명을 상대로 제기한 5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2024년 9월 사건이 접수된 지 1년 6개월 만이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자체가 부당하고 위법했는지 여부와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이 실제 손해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 사건을 크게 두 쟁점으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연금 측에 "합병 부분에 대한 주장은 소장에 비교적 많이 담겨 있지만 정부의 부당 개입 부분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메이슨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문과 엘리엇 ISDS 관련 영국 하이코트 파기환송 판결문, 국정농단 사건과 뇌물 사건 판결 등 관련 자료를 폭넓게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회장 측은 "원고가 주장하는 합병 목적과 경과,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합병이었다는 점,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이 있었다는 점은 관련 형사사건에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단순히 형사처벌 수준의 증명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원고 주장과 반대되는 사실관계가 인정됐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측도 "당시 삼성물산은 경영 위기에 있었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은 이를 극복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며 "합병 검토 역시 충실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햇다.
문 전 장관 측은 "문 전 장관은 합병 자체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다"며 "국민연금이 규정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보고를 받고 승인했을 뿐"이라고 했다. 홍 전 본부장 측도 "합병이 무산됐다면 오히려 양사 주가가 더 떨어져 국민연금이 더 큰 손해를 봤을 수 있다"며 실제 손해 발생 자체를 부인했다.
반면 국민연금 측은 "이 사건 합병은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며 "삼성 관계자들은 총수 일가에 유리하고 국민연금에는 불리한 합병비율이 적용되도록 여러 위법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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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 내부자 또는 사실상 지시자로서 이런 행위에 관여하거나 방조했다"며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민사상 책임까지 곧바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증거를 토대로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손해액 산정 방식도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 측에 당시 보유 주식 수와 손해 산정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메이슨 판정문에서는 2015년 7월16일 기준 삼성물산 주가를 6만9300원으로 보고 1주당 1만2352원가량의 손해를 인정한 것으로 안다"며 "특검의 추정 손해액 등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관련해 국민연금 측은 손해액 산정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계산 방식이 가능하고 감정에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우선 손해배상 책임의 유무부터 먼저 판단한 뒤 손해액을 따지는 방식으로 심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시작됐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가진 최대주주였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논란이 있었던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압박한 혐의로 각각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 회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 지원을 대가로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다만 이 회장 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부정거래·시세조종·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전부 무죄가 확정됐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6월 4일 오후 3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