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해 보여준 가짜 투자사이트가 진짜 거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이 진짜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으로 믿을 정도였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죄단체가입·범죄단체활동·사기·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모씨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권씨는 중국에 있는 총책이 운영하는 투자사기 조직의 고객센터 직원으로 활동한 혐의를 받는다. 조직은 텔레그램 리딩방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한 뒤 주식 투자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실제 증권거래 플랫폼처럼 보이는 투자사이트를 보여줬다. 사이트에는 국내외 주가지수와 수익률, 거래 화면 등이 표시됐지만 실제 주식이나 파생상품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사이트를 믿고 돈을 입금했지만 투자금은 조직이 가로챘다. 검찰은 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 62명에게서 약 84억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판단했다.
쟁점은 가짜 투자사이트를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자본시장법은 거래소 허가 없이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따라서 해당 사이트가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해야 무허가 시장 개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1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자본시장법 위반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해당 사이트가 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한 사기 수단에 불과할 뿐 실제 증권 거래가 이뤄진 시장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형량도 징역 4년으로 줄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은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실제 거래가 없더라도 보통의 투자자가 여기서 실제 주식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믿을 정도의 외형을 갖춘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투자사이트에서 실제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가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으로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췄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실제 거래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법리 오해가 있다"고 밝히고 원심 판결을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 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