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여운 외모와 달리 취업과 생계 문제에 시달리는 일본 만화 '치이카와'(한국명 '먼작귀'·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가 어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캐릭터들의 고단한 일상과 그 속에서 찾아가는 소소한 행복이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치이카와'의 첫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은 지난달 30일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지난 15일에는 개봉 보름 만에 누적 관객 수 145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갔다.
영화 개봉 이후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려는 열기도 뜨거워졌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문을 연 '치이카와샵 용산점'에는 전날 밤부터 팬들이 줄을 서는 등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한복을 입은 치이카와 인형을 비롯해 문구류와 소품 등 인기 상품은 입고 직후 품절되는 일이 잇따랐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영화관에서도 선착순 한정 상품과 팝콘통 등을 구매하려는 팬들이 몰렸다.
SNS(소셜미디어)에서는 '치이카와샵 오픈런 하는 법', '치이카와 굿즈 구할 수 있는 곳' 등 구매 정보를 공유하는 글도 이어졌다.
치이카와가 뭐길래…생계 위해 일하는 '현실' 캐릭터

치이카와는 일본의 인기 캐릭터 '농담곰'으로도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만든 작품이다.
2020년 연재를 시작해 인기를 얻었으며, 2022년부터 일본 후지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됐다. 단행본 누적 판매량은 500만부를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대원미디어가 '먼작귀'라는 이름으로 관련 상품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작품에는 치이카와와 하치와레(한국명 가르마), 우사기(한국명 토끼) 등이 등장한다. 작고 귀여운 캐릭터들이지만 이들의 일상은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다.
주인공들은 먹고살기 위해 풀 뽑기나 스티커 붙이기 같은 일을 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괴물 토벌에 나선다. 일자리가 한정돼 있어 일을 구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자격시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친구 하치와레가 시험에 합격하는 동안 치이카와는 거듭 낙방하며 다시 도전한다. 노력한다고 모두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닌 셈이다.
주거 환경도 제각각이다. 치이카와는 추첨에 당첨돼 얻은 집에서 생활하지만, 하치와레는 동굴에서 낡은 이불을 덮고 잔다. 캐릭터들의 서로 다른 처지는 현실의 주거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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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작품이 고단한 삶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힘든 일을 마친 주인공들은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노래하며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불안한 현실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불안한 현실 속 작은 위로…치이카와가 사랑받는 이유

치이카와 관련 상품을 10개 넘게 구입했다는 30대 여성 이모씨는 캐릭터의 귀여운 외모보다 이야기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처음엔 귀여운 모습 때문에 좋아하기 시작했다"며 "보면 볼수록 힘든 상황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에게 더 깊이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소심하고 겁이 많지만 다정한 치이카와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씨는 "힘들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결국 이를 극복해 내는 치이카와의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며 "주인공들의 다정한 모습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40대 여성 윤모씨도 작품 속 이야기가 현실과 닮았다는 점을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윤씨는 "'치이카와'에는 세상은 위험하고 살기 팍팍한데 눈물이 나도 어떻게든 살아가 보려는 우리 현실이 녹아있다"며 "극장판 개봉 이후 부쩍 더 인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치이카와는 성인 팬층이 두텁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장조사업체 GEM파트너스에 따르면 치이카와 팬들의 평균 연령은 약 40세로, 30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CGV 예매 분석 결과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의 20대 예매 비율이 4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빠듯한 생계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작품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제이슨 천 하와이대 역사학과 교수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5세 아동용으로 보이지만, 막상 보고 나면 이번 주를 어떻게든 버텨 내려고 애쓰는 지친 젊은이들을 위한 작품처럼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천 교수는 주인공들이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오늘날의 단기·임시직 중심 노동시장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 작품은 불안을 조롱하지 않고 그저 친구가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 준다"며 "이는 불안한 시대에 우리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