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은행원이 30년간 '야구심판'으로 산 사연?

평범한 은행원이 30년간 '야구심판'으로 산 사연?

송학주 기자
2014.01.07 06:48

[인터뷰]사회인야구 심판계의 '살아있는 역사' 한국야구심판아카데미 황정섭 심판

황정섭 한국심판아카데미 심판.
황정섭 한국심판아카데미 심판.

 "스트라이크~."

 지난 5일 경기 남양주 화도읍 인근 조그만 사회인야구장. 시린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70여명의 사람이 모여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국야구심판아카데미(UA)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야구심판 교육을 하는 현장이었다.

 1982년 처음 강습회를 개최한 지 어느덧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UA 1기로 심판계에 입문, 현재까지 30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활동해온 '심판계의 살아있는 역사' 황정섭 심판(56·사진)을 이곳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황 심판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11월 우리나라 최초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심판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에 자원했다. 이후 주중에는 은행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일요일이 되면 야구심판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엔 경기당 2000원 정도를 '거마비'로 받았다"며 "큰돈은 아니었지만 보람된 일이었기에 주말만 되면 장비를 챙겨 운동장으로 향한 일상이 어느덧 30년이 흘렀다"고 회상했다. 그는 UA가 배출한 수천 명의 수료생 중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심판직을 수행한 유일무이한 인물로 남아있다.

 황 심판은 사회인야구뿐 아니라 소프트볼 심판으로도 활약한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소프트볼 심판을 계기로 2010년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국제소프트볼연맹 심판교육에 참여, 국제심판 자격증도 획득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대한체육회 체육상' 시상식에서 심판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협회에 등록된 소프트볼팀은 모두 32개로 중·고·대학팀을 제외하면 실업팀이 5개밖에 없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며 "숙명여대 등 7개 대학에서 체육특기생으로 선수들을 선발해 진학에 도움을 주지만 소프트볼을 하려는 학생이 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소프트볼도 야구와 마찬가지로 인프라가 부족하다. 일본의 경우 소프트볼팀만 1만개 넘고 북한도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한다. 더 큰 문제는 소프트볼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약하다는 것이다.

황정섭 심판이 실제 소프트볼 경기 심판을 보는 장면. / 사진제공=UA
황정섭 심판이 실제 소프트볼 경기 심판을 보는 장면. / 사진제공=UA

 황 심판은 "소프트볼 선수로 활약하다 은퇴해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군이 많지 않다보니 꺼리게 된다"며 "일반인들도 야구와 비슷하다고만 생각하지 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저변이 확대되겠냐"고 되물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에 함께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빠지기까지 했다. 정식 종목에 다시 입성하기 위해 야구와 기구를 통합하면서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어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그는 국내에선 소프트볼 심판으로 활동하지 못한다.

 지난해 초 대한소프트볼협회장이 바뀌면서 심판진이 대폭 물갈이됐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소프트볼이 처음으로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며 "심판으로 참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하게 돼 무척 아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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