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속적 안정성장의 조건
미국발 금융불안이 다소 진정되는 기미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00원 내외를 유지하고 있고, 주가나 금리의 변동폭도 크게 줄었다. 미국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이 약화되면서, 국내 경기회복 속도에 대한 우려도 한풀 꺾인 듯하다. 최근 물가상승 압력이 증대되고 있지만 올해의 GDP성장률은 여전히 6%대로 예상된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0%에 불과했다. 따라서 올해 6%대 수준의 성장률을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화가치가 더 이상 절상되지 않을 경우 1인당 국민총소득(GNI) 1만달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계경기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 정도면 우리경제의 펀더멘털이 양호하다고 볼수도 있겠다.
문제는 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성장의 내용이다. 성장의 건강성 여부에 관한 한 그리 낙관할 일이 아니다.
우선 설비투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최근 설비투자 추계는 전년동월대비로 6월 -7.4%, 7월 -3.3%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 수준이었음을 고려할때 이는 결국 2000년 말부터 시작된 설비투자의 부진이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투자 의욕이 살아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의 하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둘째, 수출전망도 결코 밝지 않다. 당분간 수출시장의 크기는 제자리 걸음인데 반해 수출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경제는 당분간 저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IT(정보통신)산업 경기가 획기적으로 변하거나 IT 산업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성장산업이 대두 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유로 통합의 후유증,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 등으로 인해 유럽이나 일본 경제의 회복세도 미미할 것이다.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은 전통적인 중화학공업 부문에서, 그리고 동남아 및 선진 지역의 IT 강국들은 IT 부문에서 우리와의 수출 경합도를 증대시킬 전망이다.
셋째, 새로운 주력산업으로서의 IT나 BT(바이오기술), NT(나노기술) 등 신기술 산업 혹은 신기술과 전통산업의 접목 등 산업의 재편 내지 구조조정의 속도보다 산업공동화의 속도가 더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경쟁국에 비해 임금 등 요소비용이나 물류비용이 높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나 행정적 간섭 등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해외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도 많고 규모도 커진 우리 경제가 싱가포르처럼 금융 중개만으로 생존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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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당국은 우선 대내적으로 기업이 설비투자 및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 구조조정기 혹은 정권교체기에 설비투자 의욕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조원 대의 유동성을 기업 내부에 쌓아두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설비투자나 R&D 투자의 주체는 기업인만큼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맡겨야겠지만, 정부는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폐지 등과 같이 획기적인 정책적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동북아 경제권의 실질적 통합을 가속화하는 일이다. 중국과 일본간의 경제 헤게모니 전쟁이나 기타 이념적 차이 등 동북아 경제권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없지 않지만, FTA(자유무역지대) 등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서는 동북아 경제권의 공동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은 정권 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내실있는 성장을 위한 정책당국의 중장기적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