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답보된 기업은 유죄(?)

[기자수첩]답보된 기업은 유죄(?)

이정배 기자
2003.06.05 13:11

[기자수첩]답보된 기업은 유죄(?)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다. 국내 최초의 브라운관 업체인 오리온전기가 부도를 내는 상황을 보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온전기는 경기침체와 사스(SARS), 물류대란 등으로 매출이 급감, 자금난이 악화되면서 자력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어렵게 돼 부도가 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온전기의 이러한 모습 뒤에는 이유야 어떻든 시대상황에 재빠르게 변신하지 못해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오리온전기의 주력사업은 성숙산업으로 평가받는 브라운관사업. 브라운관은 지난 90년대 중반이후 중국 동남아 등 후발국들의 추격속에 국내업체들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또, 새로운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는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와 PDP(액정 플라즈마 디스플레이패널)가 거세게 도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2007년 이후엔 브라운관산업이 완연한 퇴조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지적을 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업체들도 이러한 브라운관의 한계를 절감하고 90년대초반부터 사업을 접거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소니 등 80년대까지 브라운관 시장을 장악해왔던 일본업체들은 90년대초반부터 브라운관사업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삼성SDI와 LG필립스디스플레이 등 국내 회사들도 90년대 중반이후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라인축소와 통폐합, 대형 모니터 등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 신규사업 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비브라운관 사업의 매출이 처음으로 브라운관 매출을 능가할 정도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다.

오리온전기는 그러나 이러한 가파른 디스플레이 산업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까지도 전체매출 중 브라운관 비중이 여전히 90%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PDP와 유기EL 등 새 디스플레이사업에 진출을 모색했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과 옛 대우계열사로서의 자금부족 등 내홍에 시달리면서 성공적인 변신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최근에 와서 노조와 경영진이 합심해 회사 살리기에 적극 나섰지만 회생을 위한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변화의 물결은 재빨리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오리온 전기를 기다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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