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얼치기 좌·우파

[시평]얼치기 좌·우파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2006.12.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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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우리의 사계절 가운데 가을과 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는 있으나 계절의 진행은 아직도 엄연하다. 새해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 해를 보내는 모임이 잦아지고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따라서 여름과 가을이 온 다음 다시 겨울이 뒤따르는 현상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정서적이고 적지 않은 감회를 수반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계절의 진행이 천체의 운행과 결부되어 있다는 천문학적인 사고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조용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얼마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석양에 강변북로를 따라 평자의 집이 있는 서쪽으로 가는 길에 보는 해는 참으로 많이 남쪽으로 내려가 있다. 다시 저 해가 우리의 머리 위로 올 때까지 우리는 이제 닥칠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몇 개월의 추위가 지나고 나면 다시 봄이 오고 이어서 여름이 온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명료함이 없다면 겨울은 아마도 견디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 겨울이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얼마 뒤까지도 평자는 자신을 중도 좌파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놀라곤 한다. 이와 같은 정체성의 혼란은 비단 평자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이 나라 권력의 핵심에 있다는 386좌파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은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와 같은 정체성의 혼란은 그들이 얼치기 좌파들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안기부장이나 통일부 장관을 누구로 하느냐가 중요할 뿐 겨울의 추위를 견뎌야 하는 남쪽 어느 섬의 어린 고아 여학생이나 독거노인들 그리고 노숙자들의 고통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순수한 좌파들에게는 모욕이겠으나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 좌파에 대한 정치적인 보상이 크기 때문에 좌파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평자의 머릿속에 있는 좌파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 거대 권력에 항거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대변하고자 노력하는 부류들이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외칠 뿐만 아니라 조세 정의를 추구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좌파가 아니었던가? 정치적인 승자는 아닐지라도 사회적인 정의에 대한 판단 기준의 한 축을 제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에 있어 좌파가 아니던가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 이기주의를 위하여 거의 매일 도시의 거리를 점령하고 시민에게 불편함을 주면서 역으로 그 정도의 불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만 성숙한 시민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얼치기 좌파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이제 많은 것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와 같은 행동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생산해 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연민을 왜 갖지 못하는가?

이 땅에는 이제 얼치기 좌파와 얼치기 우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얼치기 우파들은 무분별하게 사익을 추구하고 얼치기 좌파들은 역시 무분별하게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대선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이들이 판칠 새해가 염려스럽다. 얼치기들로 구성된 이 땅의 주류들의 되풀이 되는 이전투구를 보면서 왜 우리는 위기를 통해서만 변화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 연초에 한 해 경제의 중요한 변수로 환율과 유가의 움직임 그리고 양극화를 거론한 바 있다. 물론 이들 변수들의 움직임이 새해에도 중요하리라고 보지만 새해는 아무래도 새로운 위기를 예비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좌와 우를 막론하고 무분별한 얼치기들이 날뛰는 선거 판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대변해줄 세력이 없는 이 땅의 많은 약자들이 그 결과 또 얼마나 힘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새해에는 이들 얼치기들이 정리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위기를 겪지 않고도 인기 영합주의자들이 정리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치와 경제를 기대해 본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하지만 자연의 이치와는 달리 이 겨울 뒤에 이 나라에 더욱 혹독한 겨울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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