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본 투자.."브레이크부터 조여라"

자기자본 투자.."브레이크부터 조여라"

배성민 기자
2007.05.10 09:03

[리스크관리=수익 및 경쟁력 원천]<4-1>PI·PEF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국민은행 지분을 5억 달러에 샀다가 11억5500만 달러에 팔았다. 또 진로 부실채권 1조4600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1조7000억원의 매각 차익을 얻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긴 하지만 개별 회사의 투자성과로서는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성과의 이면에는 탄탄한 그물망이 있다. 하루에 허용되는 최대투자손실금액 기준이 1억1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고수익 추구에 따른 손실위험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리스크 회피가 아닌 철저한 리스크 관리의 대표적 사례다. 국내 증권사들이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에 즈음해 투자은행 변신을 위해 뛰고 있다. 남의 돈을 굴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데서 벗어나 직접투자((PI, Principal Investment)와 PEF(사모투자펀드) 자본참여 등을 통해 자기 돈을 과감히 쏟아붓는 통 큰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계획에 따른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며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이라고 조언한다. 리스크 관리와 고수익 추구는 흔히 수레의 양 바퀴에 비유된다. 리스크에 눈감은채 고수익의 성과를 기대하면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리스크 회피에 집착하다 보면 고수익 실현은 요원한 일이 된다. 양 바퀴가 같은 크기로 비슷한 속도로 보조를 맞춰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한 바퀴만이 지나치게 크거나 속도를 높이면 수레는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헛돌게 된다. 제자리걸음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방향이 아닌 곳으로 흘러가게 돼 사공이 있음에도 배가 산으로 가는 낭패에 빠질 수도 있다.

◇PI.PEF 고수익 전제는 리스크관리 능력..인력투자가 대세

예금보험공사가 최근 발표한 '지난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의 경영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만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 5개 주요 IB의 평균 자기자본은 지난해말 현재 26조원으로 국내 5대 증권사 평균 1조8,000억원의 13배에 달했다. 또 5대 IB의 2006년 평균 당기순이익은 5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9.8% 늘어나는 등 급신장세를 보였다.

글로벌 IB들의 주요 실적개선 요인은 자기자본으로 증권 거래를 하거나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에 뛰어드는 '자기거래'(트레이딩과 자기자본투자) 부문의 수익 증가이다. 특히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당기순이익을 낸 골드만삭스의 경우 중국 공상은행이나 일본 스미토모미쓰이 금융그룹 지분을 사들이는 등 활발한 자기자본 투자를 통해 자기거래 부문의 수익이 순영업수익의 64%를 차지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투자수익 못지 않게 주목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다. 예보는 "골드만삭스의 경우 지난해 하루에 허용되는 최대투자손실금액 기준이 1억100만 달러에 달하는 등 고수익 추구에 따르는 높은 손실위험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비책을 갖추고 있다"며 "국내 증권사들도 이 같은 고위험ㆍ고수익을 추구하는 영역으로의 확대가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거대한 성(城)의 규모에 놀라기 보다는 주변에 파놓은 해자(垓字, 성 밖을 둘러파서 못으로 만든 곳)와 벽돌, 수비병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유신 부사장은 리스크관리의 시작은 인식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리스크 관련 부서를 비용을 쓰는 부서(cost center)가 아닌 수익을 내는 부서(profit center)라고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의 리스크 관리 부서는 대개 소규모인데다 수익과 연계된 리스크관리 시스템도 미미한 실정이다. 증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리스크관리 부서에 배치된 평균 인력은 4.7명으로 지난 99년(3.8명)에 비해 1명도 채 늘지 않았다. 영업부서나 IB관련부서보다 리스크 부서 구성 인력은 인사, 총무, 기획부서와 같은 스태프 조직과 유사하고 인센티브도 타 부서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권사의 82%는 리스크 관리 부서의 인센티브 유무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외국계 증권사가 리스크 관리 부서의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답한 것(33%)에 비해 2.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증권연구원은 "리스크 관리부서는 수익을 직접적으로 창출하지 않는 부서이므로 성과평가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으면 타 부서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우려가 크다"며 "리스크 관리부서 자체에 근무하는 것이 기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백억 ~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PI투자에서 리스크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데도 불구하고 관리가 아닌 회피에 머물고 있다는 주장인 것.

물론 변화의 조짐도 있다. 200억원을 투입해 영국 선가드사의 종합리스크관리시스템을 새로 도입.완공할 계획인 대우증권은 PI와 PEF관련 부서가 투자안을 검토할 때 현장에 리스크 관리 부서의 직원들이 반드시 동반 출장을 가도록 하고 있다.

한국증권은 PI부서와 리스크 관리, 파생상품 설계부서가 팀웍을 일궈내며 성과를 거둔 사례가 이미 있다. 지난해 말 발행한 CLN과 ABCP(중소기업은행의 30년물 신종자본증권(Hybrid Tier1)이 기초자산)에서 금리 스왑계약과 금리 변동시 재매입 약정으로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당시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기관투자가 투자 참여부진의 위험성을 지적하자 파생상품부서는 이를 고려한 투자상품을 선보였던 것. 외국계 증권사와 맺었던 금리스왑계약도 리스크 관리 부서의 적절한 브레이크 역할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리스크 관리 인력을 바이사이드 애널리스트로 육성하라

정유신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리스크가 회피가 아닌 관리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철저히 구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드웨어라면 투자안과 리스크 관리부서의 대응안을 병렬적으로 대비시키는 데이터 베이스(DB)를 축적하는 것과 리스크 관련 부서를 능력 있는 직원들로 채울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 해외의 선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라도 국내 실정에 맞게 적절히 변용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대우증권 명진훈 리스크관리부장은 "새로운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 제품선정과 계약 단계에서 1년, 추가 요구 사항을 반영하고 이를 변용하는데 8 ~ 9개월 정도가 걸린 것으로 본다"며 "완벽한 시스템을 빨리 도입하는 것 못지 않게 회사의 실정에 맞게 이를 철저히 변용시켜 잘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상당수 증권사들이 쓰고 있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으로는 파생 상품을 포괄, 운영하기가 어렵다.

수년간 압도적인 세계 1위인 지수옵션시장을 비롯해 국내 파생상품의 거래량이 천문학적이지만 해외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드물어 해외 리스크 관리 시스템으로 이를 보완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국내에서는 걸음마 단계인 증권사의 PI, PEF분야에 대한 비중이 다른 것도 문제다.

증권사들은 PI나 PEF투자의 리스크 관리에서 기간과 투자방법도 중시한다. 투자를 결정했던 이들이 해당 업무를 떠날 경우 긴장도나 주목도가 이전과 같기 어렵기 때문에 5년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회사의 단독 투자보다는 타사와의 공동 투자를 상대적으로 선호한다.

리스크 관련 부서의 의견과 투자 부서의 의견이 병렬적으로 최종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증권연구원은 "최고 경영자(투자 결정자)가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는 인식만을 피상적으로 갖고 있는 사례가 많았다"며 "측정된 리스크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리스크를 반영한 경영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PI를 통해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같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에 투자해 놓고도 리스크 관리에 나선 우리투자증권도 모범사례다. 농심 CB를 투자하면서 전환에 앞서 대주를 통해 헤지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한 것도 리스크관리 부서와 IB담당 부서가 조율을 거친 결과였다. 수익이 기대보다는 줄었지만 리스크 관리의 선례가 마련된 만큼 회사로서도 만족스럽다는 평가다.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 인력을 자체적으로 육성하는 것 외에 고액 연봉자 영입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나온다. 정유신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증권사의 성장속도와 리스크 관리 능력 향상은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비해 해당 인력을 키우는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매니저(영업인력)나 리서치센터 인력 못지 않게 리스크 관리 전문가에게도 고액 연봉을 줄 수 있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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