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불만제로]2-2. 화곡동 고지대 배달 야쿠르트 아줌마 윤성순씨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20년 동안 누군가를 매일 만난다면 가족일까, 친구일까, 그래도 그저 남일까.
친구도 연인도 아니지만 윤성순(53)씨는 지난 20년간 화곡동 일대 주민들에게 그래왔다. 20년간 한 결 같이 묻는 안부에 누구는 냉커피 한 잔, 누구는 김치부침개 한 접시로 화답했다.
윤씨는 '야쿠르트 아줌마'다. 누가 뭐래도 서울 강서구 화곡동 그녀의 '나와바리(배달지구)' 주민들은 그녀를 모르는 이가 없다. 화곡 2동, 4동, 8동. 최근엔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배달지구가 하나 줄어 그녀가 커버해야 할 지역이 더 넓어졌다. 윤 씨가 맡고 있는 배달지구는 고지대가 많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배달을 못한 날은 없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윤씨는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아침 8시면 집을 나선다. 그날의 배달물량을 점검하고 배달전동차에 제품을 싣고 하루를 연다. 그녀를 기다리는 고객이 200여 가구에 달한다.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 버거울 만도 하지만 화곡동에서도 고지대가 많기로 유명한 지역을 20년째 꼬박 배달했다.

"고객이 기다리고 있는데 안 갈 수가 없죠. 5분, 10분 만 늦게 가도 고객들이 알아요. 야쿠르트 아줌마의 배달시간은 살림하는 주부들에겐 시계와 같다는 뜻이죠. 늦는다고 닦달하는 게 아니라 걱정해주시는 고객이 많죠."
70도는 되는 급경사길. 윤씨는 30대 초반의 기자보다 빨리 오른다. 따라 걷기가 버겁다. 계단 오르내리는 걸음도 가볍다. 한 병에 200원이 채 안 되는 야쿠르트 한 병을 배달하러 고지대를 오르는 게 쉬울 리가 없지만 윤 씨는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2001년 전동차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근 12년을 카트를 이고 끌며 야쿠르트를 배달했다. 이젠 전동차가 도입돼 한결 수월해졌고 20년 '관록'도 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가 오는 날 만큼은 베테랑 윤 씨도 힘. 들. 다. 애들도 다 커 그만두려 한 적도 있지만 고객들이 전화로 찾는 통에 며칠 만에 다시 복귀했단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도 있다. 새로 배달 신청을 하는 집은 깜빡 잊고 지나칠 수도 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배달일지를 지갑보다 중히 챙긴다. 하루는 분명히 야쿠르트를 배달주머니에 넣어놓고 왔는데, 배달이 안됐다는 클레임이 접수됐다.
호통 치는 고객에게 맞서지 않는 건 윤씨의 철학이다. 억울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1병 다시 드리고 죄송하다 했다. 알고 보니 그 집 아이가 엄마 모르게 야쿠르트를 빼먹었단다. 그 고객과는 이후 더 돈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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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이날 점심 보신탕집을 찾았다. 계절 바뀌면 동료들과 간혹 찾는단다. 한국야쿠르트 양목점 아줌마 3인방이 모였다. 모두 16년 이상 베테랑이다.

이향숙(49)는 연신 울리는 핸드폰 때문에 밥 먹을 틈도 없다. "왜 안와? 몇 시에 올려구? 올 때 약국서 약 사오는 거 잊지 말구, 울 손주 올 시간 됐는데 손잡고 델꼬 와줄거지?" 놀이방 다니는 손녀를 둔 할머니 고객이다. 처음 배달을 시작한 16년 전 이 씨가 배달한 야쿠르트를 마시고 자란 할머니의 아들은 이제 아버지가 됐다. 지금은 아빠 대신 손주가 대물림해 고객이다.
"맞벌이 부부 가정에 배달할 땐 일단 여자 고객과 모든 대화를 해요. 오해 사지 않으면서 민감한 고객들 심리도 배려하는 거죠. 살갑게 인사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고객에겐 깍듯이 인사만 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고지대라 사실 몇 배 더 힘이 드는데, 이상하게 배달지구 바꾸는 게 싫어요. 그냥 남이라고 생각하면 못하죠."
개고기가 바닥을 드러냈다. 수육도 탕도 말끔히 비워졌다. 방문할 때마다 고객들이 요리한 음식마다 한 움큼씩 주고 간을 봐주기까지 하다 보니 먹성이 좋아졌단다. 야쿠르트 아줌마 3인방은 그렇게 누군가의 남편 흉을 들어주고, 누군가 넉넉하게 부친 김치전을 먹어주러 종종 걸음으로 일어났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1971년 47명의 판매원으로부터 시작해 지금은 1만3500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판매조직이 됐다. 이를 통해 팔린 야쿠르트 개수가 400억 병이 넘을 정도. 연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올리는 매출도 8000억 원에 달한다. 한국야쿠르트는 이에 힘입어 지난해 연매출 1조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