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크게 생각해달라" 고비마다 친서로 지원 사격···수차례 결렬 위기 넘겨
지난해 10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의 유전 계약 협상장. UAE는 "한국의 기술력이 솔직히 너무 약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협상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원유개발 순위 세계 77위에 불과한 한국에 유전을 줄 수 없다는 UAE의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역사상 최대 규모 유전 확보 프로젝트가 중단될 위기였다.
'세계 석유1번지'로 불리는 UAE 아부다비 유전은 1973년 일본에 마지막으로 문호를 개방한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진출 국가 외에는 누구에게도 개방되지 않았다. 원유자급률 2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석유 메이저들만의 '프레미어 리그'로 불리는 아부다비 유전을 반드시 뚫어야 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칼리파 국왕에게는 친서를 보내고 원전 진출 과정에서 친분이 깊은 모하메드 왕세자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한 것도 수차례 였다.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한국의 진출이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100년간 양국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극비리에 대통령 특사로 열 차례 이상 UAE를 왕래했다. 다행히 중단됐던 협상이 어렵사리 재개됐고, 13일 10억 배럴 원유 확보, 3개 미개발 유전 독점 개발을 골자로 한 역사적인 낭보가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UAE 유전 확보 특명을 내린 것은 지난해 말, 한국전력이 UAE 원전 수주를 확정한 직후다. 처음 실무진들의 보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석유 메이저들과 석유공사와의 기술력은 100분의 1, 규모는 20분의 1에 불과한 현실에서 UAE가 한국에 유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였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과거 우리가 석유화학, 조선소 등을 지을 때도 경험이나 실력이 있어서 해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결국 2009년 2윌 미래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테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협상은 예상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차원이 다른 기술력과 분석력으로 무장한 UAE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지지부진 하던 협상은 지난해 5월 UAE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 대통령이 왕세자를 만나 협상 분위기를 띄웠다. 이후 7,8월께 UAE측은 대통령의 직접적인 의지 확인을 요구했고, 이 대통령은 친서로 UAE 진출을 바라는 진정성을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친서에서 "한국은 단순한 유전개발 사업자가 아니라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아부다비의 경제협력 파트너다. 크게 생각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지식경제부와 석유공사가 참여하는 등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이미 석유 메이저들이 차지하고 있는 10억 배럴 규모의 상업유전은 이들의 계약이 만료되는 2014년부터 한국이 권리를 넘겨받기로 했다. 이중계약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이번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되 내년부터 재계약 협상을 하나씩 마무리해 나가기로 했다. 미개발 유전에 대한 협상도 진행돼 5.7억 배럴 규모의 3개의 미개발 유전 광권에 대한 독점 권리도 보장받기로 했다.
독자들의 PICK!
하지만 양국의 협상은 대통령 출국을 불과 2주일 앞둔 2월 말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UAE 실무진에서 개발 경험이 없는 한국에 국가의 핵심 자산인 유전을 한꺼번에 내줄 수 없다며 협상을 틀어버린 것이었다. 이번에 1개만을 한국에 주고 추후 협의하자는 안을 UAE 고위진에서 내놨다. 이 대통령은 다시 친서를 보내 UAE를 설득했고, 합의를 끌어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수차례 친서와 전화통화에서 양국의 100년 형제 관계와 미래비전을 제시해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UAE와의 협상을 극비리에 주도했던 박수민 미래기획위원회 총괄기획국장은 "선진국이 독점해온 세계 6위 매장량의 UAE 아부다비에 한국이 진출하게 된 것은 한국 석유산업 발전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