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와 유관 기관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에 인사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둔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들은 좌불안석이다. 정부의 인사개입 논란이 불거지며 연임에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달부터 내년 초까지 금융투자협회장과 10여 개 증권사 사장들이 줄줄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후임자를 놓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하마평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정부의 인사개입 논란이다.
이와 관련, "특정 CEO가 전 정권 고위 인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정부나 정치권에 돌면 연임에 불리하다"는 말까지 나돈다. 한 증권사 임원은 "CEO들이 기획, 대관업무 임직원을 동원해 정부, 정치권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던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지난 4일 연임 포기를 선언한 것은 정부의 인사개입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투협회장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직후에 황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터져 나왔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커졌다.
검투사로 불리며 증권사와 은행 CEO를 두루 거친 황 회장은 연임 도전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불출마 선언 직전까지만 해도 연임 도전 쪽에 무게가 실렸다. 10월 말, ;증권사 중장기 균형발전 방안 30대 핵심과제'를 직접 발표하는 등 업무에 의욕을 보인 점도 연임 도전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새 정부 첫 금융당국 수장인 최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특정 대기업 그룹에 속한 분이 그룹 후원이나 도움을 받아 회장에 당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작심 발언을 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누가 봐도 최 위원장의 발언이 삼성그룹 출신인 황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결국 황 회장은 며칠 후 차기 회장 불출마를 공식화했다. 특히 황 회장은 "현 정부와 결이 다른 것 같다", "국회에 건의해도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고 정부와의 불협화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나의 현재 상황이 외교적 표현 가운데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외교적 기피인물)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해, 불출마 배경에 현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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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부의 증권업계 인사개입 의혹이 적폐청산 인사 논란으로 옮겨붙을 조짐이다.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대거 중용되는 반면 특정 인사들이 적폐로 매도돼 교체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훼손한 인사라면 당연히 청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묵은 관치금융 망령을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는 것을 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