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기로에 선 삼성, 노조의 길③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더 속이 타죠. 원청업체 파업 걱정은 남일인 줄만 알았습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A사의 제조전략담당 B임원은 지난달부터 출근하면 삼성전자 노조 상황부터 챙긴다. 지난 2월부터 격화한 삼성전자 노사갈등의 연쇄충격이 협력업계 전반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원청업체의 사소한 변화가 '1년 농사'를 좌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꼭 발주량이 줄지 않더라도 마진만 조금 조정돼도 협력업체에서는 곡소리가 난다.
B임원은 "대기업이 기침을 하면 협력업계는 독감을 앓는다고 하지 않냐"며 "삼성전자 협력업체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삼성의 노조 문제를 걱정하게 될 줄 몰랐는데 혹시 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노사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협력업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달부터 사측을 상대로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을 불사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미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를 거치면서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노조는 이달 들어 다시 성과급 지급 체계 공개 등의 요구안을 제시하면서 오는 25일까지 사측에 답변을 요구했다.
협력업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25일 이후에도 노사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노조가 결국 파업에 돌입하는 상황이다. 노조 조합원 숫자가 적다고 해도 파업이 발생하면 그 자체가 삼성전자의 기존 경영전략에 변수가 될 수 있다. 당장 삼성전자의 투자 시기가 한달만 늦어져도 직원들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협력업체가 적잖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는 1차 협력업체만 200개사가 넘는다. 2·3차 협력업체까지 범위를 넓히면 500개 이상의 기업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안에 대한 협력업계의 시선에도 불안감이 그득하다. 삼성전자는 2021년도 임금협상에서 전직원 기본급 1000만원 인상, 영업이익 25%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 안팎에서 노조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노조의 이런 요구 이후 그동안 사측과 원만한 임금 논의를 진행해왔던 노사협의회까지 올해 기본급 15.7% 인상안을 꺼내들고 나섰다.
삼성전자의 또다른 협력업체 임원 C씨는 "원청업체의 임금이 오르면 협력업체에서는 여러 경로로 단가인하 압력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될 수밖에 없다"며 "삼성이 그런 적은 없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불안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협력업체의 위기가 삼성전자에도 득이 될 게 없다고 경고한다. 삼성전자에서 1차 협력업체, 2·3차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국내 산업 생태계에서 협력업체의 약화는 곧 삼성전자 미래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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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한 인사는 "특히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 밸류체인에 균열이 생기면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기 어렵다"며 "1·2차 협력업체들이 붕괴되면 일시적으로 대체할 기업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협력과 신뢰 체계를 갖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전자처럼 영향력이 큰 기업의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노사가 상생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며 "대기업 노조 스스로도 국제경쟁력 확보와 협력업체 상생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