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4.16의 '유언비어'

[광화문]4.16의 '유언비어'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부장
2014.04.29 05:09

[세월호 참사]유언비어의 근원지 언론, 이제부터 진짜 싸울때다

수일 전, '바닷속 세월호'에 갇힌 이들 중 단 한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기도하는 맘이 간절했던 그때. 페이스북 담벼락에 한 친구가 올린 글을 내 담벼락에 공유해놓고 곱씹는다.

"분노와 비판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제대로 알아야 할 때인 거 같다. 분노하고 비난해야 할 대상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유언비어의 근원지인 언론, 돈 때문에 사람 목숨을 내팽개친 선박회사. 다른 사람들이 슬픔의 방식을 어떻게 선택하든 서로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언비어의 근원지 언론'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모두 땅을 친, 세월호 침몰이 시작된 후 가장 중요했던 4월16일 오전 8시55분부터 초기 몇 분 혹은 이후 몇 시간. 대통령조차 "일몰까지 시간 없다"라고 한 사고 당일 오후 5시30분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나.

우리가 주되게 한 일은 관이 발표하는 자료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행위였다. 정부의 일사불란한 구조전략과 발표를 믿고 따르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거다. 하지만 이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행위이기도 했다.

'해군 -독도함(1만4천t), 대조영함(4천500t), 서울함과 충남함(1천800t), 향로봉함(2천600t)…고속정(200t) 5개 편대의 10척, 항만지원정 2척 등 28척의 함정을 급파…해난구조대(SSU) 107명, 특수전 전단(UDT/SEAL) 196명 등 구조대 229명도 투입. 공군 - C-130 수송기, 구조헬기 HH-60와 HH-47 급파. 육군 - 특전사 신속대응부대 150명, 경비정 4척, CH-47 헬기, 구급차 11대, 대형버스 9대 등 지원. 미군-'본험리처드함(4만t급)' 구조작전 긴급 투입.' 당일 오후 5시47분<육·해·공군 전력 총동원 구조작전(종합2보)>란 제목으로 올라온 국가기간 뉴스통신사의 한 기사다.

그 시점 세월호는 선수 바닥을 하늘로 두고 거의 침몰한 상태였다. "지금 바다에 아무도 안 들어갔대요." "2명 들어갔다 나왔다는데 대기 숫자가 뭐가 중요해요." 실질적 구조행위가 안 되고 있다고 목 놓아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는 가족들에게 이런 기사는 '거짓'이었다.

이들에게 정부의 (틀린) 발표를, 혹은 '예정이다'를 포함한 구조계획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이해해달라는 건 무리다. 이후 생존한 학생들, 사망자나 실종자 가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수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우리에 대한 반발과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더욱이 '우리'와 달랐던 1인 미디어, 팟 캐스트, 블로거, 자원봉사자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비교됐다.

"…한국의 기자들처럼 능력에 과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직종은 드물 것이다. 조선조 이래 언론인은 권력의 일부로서 과도한 역할을 해온 전통이 있다. '양반 기자'들이…안락한 서울에 앉아서 대통령 위에 있는 인사권자나 되는 것처럼 예사로 국정원장을 잘라야 한다는 글을 쓰고, 대통령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시비를 건다…." 언론계의 대선배로 통하는 조갑제 선생께서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칼럼이다.

아프지만 맞는 말이다. 해서 "40여년 세월을 그 자리에 그 방식으로 가장 많이 누린 이들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희생자, 그들 가족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지 그리고 대안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조직만이 아닌 언론인 각자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4월16일 오전 8시 이후부터 침몰 13일째 된 지금. 마지막 동영상을 촬영하면서도 친구와 선생님을 걱정하던 아이들, 살아나온 자리에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 의인들, 희미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을 얼굴도 모를 그들을 떠올리며 '진짜 유언비어'와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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