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가 극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미성년 자녀 공저자 끼워넣기, 해외 부실학술단체 ‘와셋’(WASET·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사건, 과학 관계 기관장들의 잇단 연구비 유용 의혹까지. 여기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연구분야 권위자의 ‘특허 가로채기’ 의혹 논란까지 이어져 과학기술계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물론 일련의 연구비리 의혹 중엔 시시비비를 더 가려봐야 할 사건도 분명 있다. 그래서 특정 개인에게 상당히 억울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들로 국내 전반적인 연구활동과 관련 예산정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초연구 결과물에 대한 기술사업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걱정도 쏟아진다.

따지고 보면 우리 과학계가 반드시 한번 앓고 넘어가야 할 ‘홍역’일 수 있다. 연구윤리 실태에 대한 잇단 문제제기는 수십 년 동안 과학기술계에 적체돼 있던 관행과 관습에 대한 비판의식의 발로일지 모른다.
미성년 자녀 공저자 끼워넣기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4월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신의 논문에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미성년 자녀를 공동저자로 올린 부정사례가 138건이나 적발됐다. 곱씹어봐도 과학기술계의 낯부끄러운 민낯이다.
참가비만 내면 심사를 받지 않아도 엉터리 논문을 실어주고 학술발표까지 시켜주는 부실 학술단체 ‘와셋’ 투고순위 5위권에 한국이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부실 학회가 우후죽순 생겨난 이유로 연구비 관리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한다. 한 연구자는 “연구비를 매년 정산해야 하는 구조다 보니 연구비 소진을 위해서라도 해외 학술대회 참여 등으로 어영부영 소진하는 관행이 생겼다”고 말했다.
현실과 괴리된 제도도 문제다. 연구윤리 문제를 과학자들의 양심에 맡기기엔 우리 과학기술제도가 낙후돼 있다. 중견연구자에게 연구비가 쏠리는 구조 역시 연구비 유용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여전히 논문의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연구평가제도 그대로다. 그러다 보니 일명 ‘논문 쪼개기’ 등의 편법이 난무한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정책과 제도는 현실을 모니터링하며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는 변했다. 더이상 관행이라는 명분으론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과학기술계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문화가 우선 조성돼야 한다. 잘못된 연구풍토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연구윤리 관련 각종 사건이 미래지향적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하는 성장통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