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소지가 적고 빨리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처리하면서 체력을 기르려고 한다.”
오는 17일 신(新) 기술·서비스 육성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 시행된다. 규제 샌드박스는 법 규정이 모호하거나 법령에 금지돼 있어 사업 시행이 어려운 신기술을 일정 기간 동안 실증(실증특례) 또는 임시 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부에는 각각 10개씩 총 20개의 규제샌드박스 신청 수요가 접수됐다.
최근 택시업계와의 갈등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카풀(승차공유)’ 관련 서비스 역시 원론적으로는 사업자가 신청하면 심의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카풀 서비스를 허용할 것이란 기대감은 높지 않다. 정부가 갈등소지가 크지 않은 사안부터 우선적으로 규제 샌드박스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은 후순위로 미루겠다는 얘기다.
제도 시행 초기이다 보니 신기술·서비스의 실증 및 테스트를 결정한 심의위원회가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에 대해 권한을 얼마만큼 행사할 지 여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심의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위원 6명과 민간위원 13명으로 구성된다. 특정 사안을 두고 정부부처간 마찰이 발생할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중재장치도 마땅치 않다.
특히 카풀 서비스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게 정부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카풀 문제만큼은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고 거론했을 정도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이틀을 앞둔 15일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시범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것도 이런 정부 기조를 확인했기 때문 아닐까. 시범 서비스 중단은 택시업계가 사회적 대타협기구 참여를 전제로 내세운 조건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사회적 합의를 우선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카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에 존폐 위기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던 스타트업들에게 규제 샌드박스는 한줄기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소극적으로 운영할 경우 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 규제 샌드박스 시행 이전에도 정부는 규제 혁신 의지를 분명히 했지만 주요 사안마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산업위)는 카풀 앱 관련 사안에 대한 ‘규제·제도혁신 해커톤(마라톤 토론)’을 진행하려 했지만 논의 테이블에 올리지조차 못하고 1기 활동을 마무리했다. 2기 4차위에서는 논의 초기단계부터 국회와 함께 문제 인식을 공유하겠다고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렵게 마련된 제도라면 시행 초반 과감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그래야 스타트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해법 장치로 자리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