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논란이 뒤늦게 불거지고 있다. IT(정보·기술) 업계가 입법당시 제기한 우려가 시행 이후에야 확산된 모양새다.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데, 성착취물을 막아야 한다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앞서 지난 10일부터 'n번방 방지법' 시행으로 카카오·네이버 등에서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적용됐다. 구글·메타·트위터 등 8개 해외 인터넷 사업자와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포털·SNS·메신저·인터넷개인방송 87개 사업자가 대상이다.
법안이 시행되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용자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부 동영상과 움짤에서 불법촬영물이 아닌지 검토한다는 문구가 표시되고 게시나 전송이 수초간 지연돼서다. 정부차원의 사적검열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이에 반발한 일부 이용자들은 '검열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음란물에 준하는 사진과 영상을 마구잡이로 오픈채팅방에 올리며 항의하고 있다.
이에대해 정부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영상이 유통되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정작 'n번방 방지법'을 통해 불법 성착취물을 잡아내기 어렵다는 비판에는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IT 업계에서는 현행 'n번방 방지법'으로는 불법 성착취물을 막기 어렵다고 본다. 법자체가 충분한 검토없이 당시 n번방 사태에 분노한 여론에 떠밀려 졸속 추진됐다는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됐던 n번방은 비공개로 운영되는 텔레그램에서 벌어졌다. 아울러 디지털 성범죄 온상으로 꼽히는 '디스코드' 등 해외에 법인을 둔 사업자도 제외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불법적인 음란물이 유통되는 사이트 대부분이 해외에 있는데, 이런 부분은 해결하지 않고 엄한 것들만 규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법령에 '명백하게 일반인에게 공개돼 있는 정보만을 대상'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서도 n번방 사건 재발방지 의지가 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개된 온라인 공간에서 불법 촬영물이 유통될 확률이 높지 않아서다. 오히려 현재 필터링 대상이 아닌 개인간 채팅, 1대 1 오픈채팅, 비공개 채팅방, 비공개 카페·블로그 등이 불법촬영물 유통채널일 가능성이 큰데 이는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n번방 이후 경찰이 주범들을 계속 검거하고 했는데, 이는 텔레그램 사용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면 검거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현재 시행된 법은 국내 플랫폼에 역차별만 강화해 이용자들이 해외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썰물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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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국가가 해야 할 범인검거를 민간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국가가 왜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기술적 한계도 거론된다. 불법촬영물 확인은 정부가 보유한 불법촬영물 DB와 이용자 동영상의 '키워드'나 '해시값'을 대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동영상의 확장자가 바뀌거나 파일 압축 등 변환이 가해지면 해시값은 쉽게 바뀐다는 한계가 있다. AI(인공지능) 필터링은 아직 보조적인 수단에 그친다. DB에 없는 새로운 불법 성착취물이 나올 경우에도 확인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이 동영상을 직접 열람하지 않고서는 불법촬영물을 100% 확인하는 기술은 현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사적검열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3월 헌법소원을 내고 "(필터링은) 현실적·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사전 검열을 거친 정보만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사전 허가제'로 운영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키고 있다. 카톡 오픈채팅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텔레그램으로 넘어가겠다'는 이들이 적지않다. 2014년 카톡 검열 논란으로 대거 텔레그램으로 이용자가 이탈한 '사이버 망명'이 재현되는 것이다. 당시 텔레그램은 이용자들 사이에서 보안성이 높다는 장점이 알려졌고 이는 역설적으로 n번방 사건의 기반이 됐다.
기업들도 과잉규제이나 역차별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불법 성범죄물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기업에대해 연평균 매출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내도록해서다. 아울러 필터링의 기술적 문제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면 인터넷 사업자는 '넷플릭스법'(부가통신사업자 서비스 안정화법)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미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불법·유해 콘텐츠 게시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데도 기업에만 과도한 의무를 지우고 정부는 뒷짐만 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권으로도 논란이 번졌다.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선량한 시민에 검열 공포 안겨준다"고 'n번방 방지법'을 비판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고 옹호했다.
특히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법안 재개정을 추진하고 나서며, 정치권은 찬반으로 갈라진 상태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IT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n번방 방지법'에 반대한다고, n번방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쟁보다는 실제 제2의 n번방을 막을 수 있는 법인지, 목적에 비해 부작용이 과도하게 크지는 않는지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