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저려" 병원 간 엄마 유전병 진단…무증상 아들은 투석 직전 '구사일생'

"손발 저려" 병원 간 엄마 유전병 진단…무증상 아들은 투석 직전 '구사일생'

박정렬 기자
2025.11.13 14:06

인천세종병원 심장내과 김경희 센터장에게 듣는 '파브리병'의 모든 것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이 머니투데이와 만난나 파브리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이 머니투데이와 만난나 파브리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전병 중에서도 '파브리병'은 희귀한 병이다. 환자가 드물고, 유전자 문제의 경중에 따라 증상이 늦게 나타나거나 너무 다양해서 놓치기에 십상이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심장내과)은 '심장 신호'로 파브리병을 잡아내는 전문가다. 50대 어머니가 그를 통해 병을 진단받고 신장 기능이 절반이나 떨어졌지만 이를 모르던 20세 아들이 뒤늦게 치료를 시작하기도 했다. 조기 진단·치료가 중요한 파브리병은 남성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경희 센터장에게 파브리병의 원인과 특징, 치료법을 자세히 들었다.

- 파브리병은 어떤 병인가.

▶파브리병은 희귀 유전성 리소좀 축적 질환으로 리소좀 내 '알파-갈락토시다아제(α-galactosidase A)'라는 효소가 결핍되거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한다. 이 효소는 세포 내에서 쌓여서는 안 될 불필요한 당지질을 분해하는데, 파브리병 환자는 해당 효소가 충분히 생성되지 않거나 전혀 만들어지지 않고 불필요한 당지질이 뇌,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에 축적되며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유전병이라면 어릴 때 발현되는 건가.

▶신생아 시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다. 효소 결핍 정도에 따라 발현 시기가 달라진다. 효소가 전혀 생성되지 않는 전형적(classical) 환자는 보통 10세 전후로 증상이 빠르게 나타난다. 후기 발현형(late-onset) 환자는 일정 수준의 효소가 존재해 일반적으로 성인 이후에 증상이 발현한다.

-주요 증상은.

▶임상 증상은 당지질이 어느 장기에 쌓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경계에 축적될 경우 손발 저림이나 극심한 신경병증성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신장에 축적되면 신부전으로 이어져 투석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이른다. 심장에 쌓일 경우 심근 비대 등이 동반될 수 있으며 뇌경색이 발생하기도 한다.

-진단이 어렵나.

▶발병 초기에는 장기가 손상되더라도 증상이 뚜렷하지 않다.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심초음파, 심전도와 같은 정밀검사가 중요한데 특히 젊은 나이에 원인 불명의 뇌경색이나 신부전으로 투석에 이른 환자, 혹은 심한 신경통을 호소하는 환자는 파브리병을 검사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신생아 선별검사가 확대되면서 조기 진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진단 누락 사례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고령층 등은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여전히 존재해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심장에서는 어떤 신호를 잡아내는 것인가.

▶파브리병이면 대표적으로 심근 비대와 심전도 이상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심장이 두꺼워지는 원인은 고혈압이나 판막 질환이 흔하며, 비후성 심근병증과 같은 유전 질환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파브리병은 효소 결핍으로 인한 심장 내 당지질 축적으로 인해 이차적으로 심장이 두꺼워진다는 특징이 있다. 또 파브리병은 심근뿐 아니라 전도계 및 판막까지 침범해서 심전도상 좌심실 비대(LVH)나 PR 간격 단축, T파 역위와 같은 전도 장애가 동반된다. 반면 비후성 심근병증은 근육 비대만 일어나고 전도 장애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인 불명의 좌심실 비대와 심전도 이상이 나타나고, 특히 원인 불명의 뇌경색·감각 이상·청력 손실이 동반된다면 파브리병을 의심하고 검사할 필요가 있다.

-실제 환자 사례를 소개해준다면.

▶50세 여성 환자가 건강검진에서 심전도 이상으로 내원했다. 심초음파 검사에서 경도의 심근 비대가 확인됐고 환자는 약한 피로감과 손발 저림 외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었지만 정밀검사 결과 파브리병이었다. 이후 시행된 가족 검사에서 아들에게도 질환이 확인됐다. 당시 나이가 20세에 무증상이었지만 이미 신장 기능이 정상치의 절반 수준으로 저하되어 있었고, 치료하지 않으면 1~2년 내 투석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가족들도 필수적으로 확인해야겠다.

▶파브리병 환자가 한 명만발견돼도 가족력 조사는 필수적이다. 당장의 임상 증상은 없더라도 조기 진단을 통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투석, 심근경색, 뇌경색 등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제가 존재하는 만큼 가족력 조사의 유용성은 더욱 크다.

-유전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파브리병은 X염색체 연관 유전질환이다. X염색체가 2개인 여성 환자는 한쪽에만 변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할 수 있다. 반면,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변이가 있을 경우 대부분 상대적으로 중증으로 발현되며 증상도 빠르게 나타난다. 실제로 남성 환자들은 치료 전 증상이 빠르게 악화하고, 효소대체요법(ERT)을 시행하면 뚜렷한 호전을 보이지만 치료받지 않으면 다시 급격히 악화하는 양상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유전 확률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파브리병을 보유한 경우 아들은 Y염색체만 물려받기 때문에 질환이 유전되지 않지만, 딸은 X염색체를 반드시 물려받기 때문에 100% 질환을 앓게 된다. 반대로 어머니가 파브리병 환자인 경우 아들과 딸 모두에게 각각 50% 확률로 발생할 수 있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센터장.

-치료는 바로 시작하나.

▶환자와 보호자에게 질환의 특성과 예후를 충분히 설명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 당시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어도 검사 수치상 신장 기능이 정상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 3~4년 내 투석 받아야 하고 젊은 나이라도 뇌경색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파브리병이 심장을 침범하면 초기에는 심근 비대가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심근이 얇아지고 기능이 저하되며 결국 심부전으로 진행해 심장이식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효소대체요법 치료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내 건강보험 기준상 파브리병이라도 치료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장기 침범 소견이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어 꾸준한 모니터링이 뒤따라야 한다. 심전도 이상, 좌심실 비대, 전도 장애 등이 발견되면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환자별로 치료 방법이 다른가.

▶파브리병 치료 시점은 환자의 임상 양상과 보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고가의 치료제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주로 보험 기준에 맞춰 치료하고 있다. 환자별로는 유전자 변이 유형에 따라 치료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유전자 결실이 큰 환자의 경우 효소가 전혀 생성되지 않아 2주에 한 번씩 정맥 주사를 투여하는 효소대체요법을 고려한다. 유전자의 부분적 결실이나 소규모 변이가 있는 일부 순응 변이(amenable mutation) 환자의 경우에는 효소 활성도가 일정 수준 이상 남아있어 경구용 약제도 고려할 수 있다. 단 경구용 약제는 결핍된 효소를 새로 공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효소 활성도가 전혀 없는 환자에게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경구용 치료제는 실제 임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나.

▶주로 순응 변이를 가진 환자 중에서도 여성 환자나 비교적 고령의 환자, 임상 증상이 약한 환자에게 사용한다. 유전자 결실이 크지 않아 일정 수준의 효소 활성이 남아 있는 경우다. 경구용 치료제는 1차 치료제로 허가받았지만 장기간 임상 데이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복용 후 손발 통증이 악화해 다시 효소대체요법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었다. 이미 단백뇨가 심하거나 심부전이 진행된 환자에게서는 효소 자체를 보충하는 효소대체요법이 더 적합하다. 핵심은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것이다. 임상의사의 안목과 경험이 중요한 부분이다.

-효소대체요법은 어떤 치료법인가.

▶효소대체요법은 2013년쯤 처음 사용했었다. 파브라자임(성분명 아갈시다제베타)은 20년 이상 표준 치료제로 사용된 만큼 장기간 축적된 임상 데이터상 안전성만큼은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파브라자임과 레프라갈 두 약제가 사용되는데 모두 효소를 보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반면 용량(파브라자임 1㎎ /㎏, 레프라갈 0.2㎎ /㎏)과 제조 세포주(Chinese hamster ovary vs human cell line)가 다르며, 이에 따라 투여 시간과 알레르기 반응 양상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약제 선택은 특정 제재에 치우치기보다 환자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임상의사가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치료 시 효과는.

▶효소대체요법은 조기 투여 시 이미 축적된 당지질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침착을 억제하고 진행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심장 침범의 경우, 두꺼워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심벽 두께가 얇아질 수 있다는 보고가 일부 있으나 이는 초창기 데이터로 최근 데이터는 아니다. 또 효소대체요법을 통해 심장의 이완 기능, 즉 혈액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

지난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심장학회(ESC 2025)에서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이 ‘심장 영상 분야 AI’ 세션의 공동 좌장(Chairperson)을 맡아 AI 활용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인천세종병원
지난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심장학회(ESC 2025)에서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이 ‘심장 영상 분야 AI’ 세션의 공동 좌장(Chairperson)을 맡아 AI 활용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인천세종병원

-최근 연구되는 약제나 치료법이 있다면.

▶최근 파브리병에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 치료제 등 유전자 치료제가 연구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를 통해 체내에서 효소를 직접 발현시키는 접근으로, 아직은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장기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는 않다. 특히 유전자 치료의 경우 추후 암 발생 위험 등의 우려가 있어 대규모 장기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 후 도입되어야 한다. 이미 장기에 축적된 당지질을 제거하는 약제들도 개발 중이다.

-파브리병 진단과 치료 시 기억해야 할 점은.

▶파브리병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 대규모 장기 데이터가 있는 효소 치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 환자의 가족까지 빠르게 스크리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실제 다른 진료과를 찾은 환자의 심장초음파나 심전도 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발견해 진단하고, 이후 가족 검사를 통해 추가 환자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파브리병의 진행 속도는 환자마다 다르지만 치료를 받더라도 고령에 이르면 심장 이식, 심부전 악화, 투석 등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남성 환자는 치료제가 도입되기 전 진단받고 도입 후 약 10년간 효소대체요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결국 심부전으로 심장이식을 받았다.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학제 진료가 효과적일 것 같다.

▶한 환자를 중심으로 여러 과의 전문의가 함께 논의하는 다학제 진료는 파브리병에 가장 이상적인 접근법이다. 그러나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여러 과 의사가 동시에 참여해 30분간 협진해도 수가 체계의 불합리로 보상이 1~2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환자·가족에 대한 상담·교육 활동의 보상도, 유전자 검사와 치료 필요성을 설명하고 장시간 상담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진료 수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동기뿐 아니라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센터장.

-대안이 있나.

▶치료는 효소대체요법 투여, 청력 검사, 신경계 통증 조절, 심부전 치료 등 각 전문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각 과에서 진료를 봐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다학제 진료 자체보다는 진료의 유기적 연계와 지속적 소통이다.여러 진료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한자리에 모이지 않더라도 다학제 진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유전질환 진료에서 2차 병원의 강점이 있겠다.

▶2차 병원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다학제적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 전문성을 갖춘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진료 체계를 운영하기에 적합하고 환자도 밀착 관리할 수 있다. 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환자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진료로 연결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김경희 센터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거리 정비 과정에서 힘없는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모습을 보고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의사를 결심했다. 현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심장내과 진료과장을 역임하고 있고 지금까지 SCI 논문 100편 이상을 발표했다. 이번 달에는 아시아 국적 의료진으로서는 최초로 심부전, 심장이식, 폐이식 등 전 세계 500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단체 '국제심폐이식학회' 신임 이사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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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의학 제약 바이오 분야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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