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값 낮추고 '혁신신약' 키운다…제약업계 "R&D 당장 위기" 반발

복제약 값 낮추고 '혁신신약' 키운다…제약업계 "R&D 당장 위기" 반발

박정렬 기자, 박미주 기자
2025.11.30 14:39

보건복지부, 13년 만에 약가 제도 손질
복제약 값 40% 수준으로 인하, '유연 계약제' 도입
혁신성 ·수급 안정 기여 인정해 가산도
제약업계 '매출 감소→R&D 퇴보' 우려

약가제도 개편안/그래픽=김현정
약가제도 개편안/그래픽=김현정

정부가 2012년 이후 13년 만에 약가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복제약(제네릭) 약가를 국제 수준에 맞춰 인하하고, 절감되는 재원을 신약·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확대에 투입하는 방향이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가 복제약 매출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제약·유통 산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8일 열린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이런 내용의 '약가제도 개선방안'(약가 개편안)을 보고했다.

복제약 가격 낮추고 신약 도입은 빠르게

먼저 복지부는 2012년 일괄 인하했던 약 중 오리지널(원조) 약가 대비 45%~53.55%인 복제약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를 내년부터 낮춰 최종 40%대로 인하할 방침이다. 50% 이상 3000여개 품목은 내년부터, 45~50%인 1500여개 품목은 내후년부터 각각 3년에 걸쳐 약가를 조정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국내 복제약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17배에 달한다는 해외 평가 등을 근거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상화"라 판단한다. 약가 개편 대상은 전체 건강보험 등재 약재 2만1000여개의 28% 수준이다. 약가 조정을 통해 연평균 2500억원, 4년간 약 1조원의 재정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했다.

확보된 재정은 신약 개발과 필수의약품 안정공급에 투자한다. 약가 개편 시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한 제약사에 가산을 주는 방식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R&D 투자 수준에 따라 68%(매출 대비 R&D 비율 상위 30%)와 60%(R&D 비율 하위 70%)의 가산율을 최소 3년 보장한다. 매출 500억원 미만 기업이나 최근 3년 내 임상 2상 승인 실적이 있는 기업도 같은 기간 55%의 가산율을 준다. 수급 안정 기여도도 반영해 △원료를 직접 생산하거나 △국산 원료를 활용했다면 68% 가산율을 최대 10년(5년+5년)간 부여한다.

약가 개편안에는 신약 개발·도입 등 접근성 확대 방안도 담겼다. 희귀질환 신약은 급여 등재까지 기간을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2026년), 중증·희귀질환 신약의 경제성 평가에 쓰는 ICER(점증적 비용효과비) 임계값(급여 허가 상한액)을 적정 수준으로 올릴 예정이다(2027년). 2028년에는 아예 유전체 기반 항암제 등 혁신 신약에 '선(先) 급여·후(後) 평가·조정'을 적용해 도입 속도를 한층 앞당길 예정이다.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 공급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코리아 패싱' 방지를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이르면 내년 2월 도입되는 이중약가제 형태의 '약가 유연계약제'는 공개되는 표시가격과 실제 적용 약가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약가를 세계 최저 수준으로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가운데 유연계약제는 신약 도입·수출 시 '협상 방어막'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 적응증이 있는 신약은 현재처럼 최저가로 약가를 산정하지 않고 각각 다르게 책정하는 '적응증별 약가제'도 검토한다.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 대책도 다뤄졌다. 국산 원료 필수의약품에 복제약 가산율을 적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상을 빠르게 확대하고, 올린 약가를 일정 기간 이상 보장한다.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기준을 10% 상향해 더 많은 필수 약을 제도 안으로 편입하고 채산성이 낮은 약은 원가 보전 기준을 연간 1억원에서 5억원으로 올리는 등 보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용량-약가 연동이나 사용범위 확대 등 약가 사후관리는 매년 4월과 10월로 정례화한다. 사업 불확실성을 해소해달라는 기업의 요구를 반영한 조치다. 2027년부터는 3~5년 주기의 종합 약가 평가·조정체계가 도입될 예정이다. 복지부는 "약가 제도를 주요국 수준으로 선진화해 치료 접근성은 대폭 높이고 약품비 부담은 경감될 것"이라며 "혁신 투자에 따른 합리적 보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내 제약산업계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제약업계 '충격'…"R&D 퇴보" 우려도 커

제약업계는 요동치고 있다. 신약 개발에 앞장서는 '혁신 제약기업' 지원과 육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당장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복제약 가격 인하가 기업 존폐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팽배하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제약사의 전문 의약품은 200~300개로, 오리지널은 10% 안팎에 그치며 나머지는 복제약이다. 신약 매출 비중이 큰 곳은 거의 없다. 규모가 큰 제약사는 일반 의약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매출 다변화를 꾀하곤 있지만 역시 복제약 가격 조정에 따른 타격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중소 제약사는 더 암울하다. 원자재 가격은 그대로인데 매출이 줄면 인력 조정과 R&D 감소가 불가피해 '혁신 트랙'을 더 타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혁신성을 인정받아도 가산 기간이 지나면 결국 오리지널의 40%대로 약가가 낮아진다는 점도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회사)상당수가 '생존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제약사에서 병·의원이나 약국으로 약을 보내는 유통사도 대량 반품 등 중단기적으로 경영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이틀재인 22일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가능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2025.07.22. 20hwan@newsis.com /사진=이영환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이틀재인 22일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가능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2025.07.22. [email protected] /사진=이영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산업계는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약가를 대폭 낮출 경우 R&D 투자와 고용을 위한 재원이 줄어 신약 개발 지연, 설비 투자 축소,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했다. 채산성이 낮은 저가 필수의약품 생산이 가장 먼저 축소돼 국민 건강과 공급망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라며 정부에 '신중한 접근'과 '산업계와 협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내 제약사와 달리 오리지널·신약 비중이 높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약가 개편안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증·희귀질환 중심의 약가 개편안이 환자 신약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 평가했다. 일관성 있고 투명한 약가 제도가 한국 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본다. 다만 ICER 임계값이나 적응증별 약가제 등이 언급만 됐을 뿐 명확하지 않아 '두고봐야 한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환자와 시민단체도 약가 개편안에 이견을 보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그간 제기돼 온 환자의 신약 접근성 지연과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 퇴장방지의약품 제도의 한계를 개선하는 방향을 제시했단 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반면 주요 보건의료 시민단체 중 하나인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국내 제약산업 재편이라는 실제 목표를 두고 약제비 문제, 환자 접근성 개선을 단지 명분으로 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약가 개편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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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의학 제약 바이오 분야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박미주 기자

보건복지부와 산하기관 보건정책, 제약업계 등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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