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 근교에서 만난 한 지역생협 운영자한테서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GMO 콩이 국내에서 자란다.’ 그는 검은 비닐 봉지 하나를 꺼내오더니 증거라며 펼쳐들었다. 안에는 누런 대두 한 줌이 들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 콩과 구별할 수 없었다.
섬뜩한 얘기다. GMO가 뭔가. 유전자조작작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란 뜻이다. 몬샌토·듀폰·신젠타 등 종자회사들은 특허 작물을 만들면서 이 작물이 스스로 번식할 수 없도록 유전자를 조작한다. 안 그러면 농민들이 스스로 씨앗을 받아서 쓸 것이고, 종자를 재판매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 ‘불임’ 작물이 땅에 떨어져 스스로 번식했다. 스스로 대를 이어가려는 유전자의 섬뜩한 힘.
국내 농가한테는 아찔한 얘기다. 한국은 GMO 농작물을 생산하지 않는 나라, GMO 청정국으로 알려져 있다. ‘국산=유전자 비조작’이라는 등식을 믿고 일부러 국산 콩 두부를 골라 사는 소비자들한테 국산콩의 GMO 오염설이 퍼지면 어떻게 될까. 국산 농작물에 대한 신뢰가 중국산 식품, 미국산 소고기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더 무서운 일은 한국 농업의 GMO 빗장이 풀릴 때 닥칠 것이다. 2003년, 브라질 정부가 GMO 콩 재배와 시판을 허용했을 때 일이다. 몬샌토는 첫해에만 1억6000만 달러, 17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특허사용료로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였다.
몬샌토는 어떻게 GMO 시판을 허용하자마자 이렇게 많은 돈을 번 것일까? 브라질 정부가 승인하기 전에 이미 GMO 농산물이 퍼져 브라질 콩 중 30%가 GMO였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한 몬샌토를 국내 농민들이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자기 씨앗을 거둬 농작물을 키우던 한 농민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 농장이 GMO로 오염됐는데, 종자회사와 소송에서 져 오히려 평생 가꿨던 농장을 갈아엎어야 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GMO 농작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발표한 ‘유전자변형생물체 자연환경 모니터링 및 사후관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개 지역 국내산 옥수수·콩·면화·유채 등 4가지 작물에서 조작된 유전자가 발견됐다. 원료로 수입된 것들이 트럭으로 운반되고 공장에서 처리되는 과정에 떨어져 주변 농작물을 오염시켰다.
그러면 원료로 수입됐다는 GMO 농작물은 어디로 갔을까? 경실련에 따르면 매년 소비되는 식용 대두의 73%, 옥수수의 46%가 유전자조작작물(GMO)이다. 국내 식용유, 올리고당·과당·원당의 원재료로 쓰이는 작물이다. 유전자 비조작(Non-GMO) 표기가 없는 가공식품과 청량음료에는 다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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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정도 먹어선 죽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GMO 사료만 먹다가 희생당한 쥐들처럼 몸 크기의 4분의 1만한 종양 등 온갖 암과 기능 장애를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GMO 농산물을 주식으로 먹지 않는 한, 그러니까 식용유로 튀긴 닭과 첨가물이 들어간 청량음료와 과자들을 주식으로 매일 많이 먹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만일 GMO가 주식이 된다면?
재배하는 콩의 거의 100%가 GMO인 미국에선 소비자들이 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버몬트 주에선 관련 법이 통과돼 2016년 7월부터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GMO 표시제를 시행한다. 그외 24개 주가 관련 법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 법은 주원료 혹은 함량이 많은 순으로 5번째 원료까지 GMO 여부를 표시한다. 6번째 원료에 GMO가 쓰였다면 표시를 안 해도 된다. GMO 완전표기제 시행에 대한 식품위생법개정안이 지난해 국회에 발의됐지만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진 못하고 있다. 그사이에도 GMO 원료를 실은 트럭은 전국을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