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억울한 독일에 공감하며

[광화문]억울한 독일에 공감하며

지영한 국제경제부장
2012.07.09 13:19

소설에 등장하는 부잣집 도련님 중에는 문제아가 적지 않다.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 나오는 부잣집 아들 조상훈은 개화기 지식인이었지만 결국에는 타락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고전소설 '이춘풍전' 주인공 이춘풍 역시 거부의 외아들로 인물이 좋고 재주가 남달랐지만,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재산을 모두 날린 '방탕아'였다. 다행히 춘풍은 '개과천선'후 새 삶을 살았다.

요즘 '유로존'이란 부잣집이 절제를 못한 몇몇 도련님들 때문에 주름이 깊다. 장남(이탈리아)과 차남(스페인)이 흥청망청 카드를 긁어댄 결과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힐 판국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인생이 망가질까 조마조마한 어머니(프랑스)는 남편(독일)을 붙잡고, 남편 명의로 돈을 차입(유로본드 발행)해서라도 애들 빚을 막아주자고 애원한다. 하지만 동생들(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사고를 쳤을 때처럼 아버지는 요지부동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그야 말로 허리 띠 졸라매며 이제 살만하게 됐는데, 자식들은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근검절약'의 '근'자도 모른다고 한숨을 짓는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게 우선이며, 카드빚을 막아주면 애들이 더 망가질 것이라 굳게 믿는다.

몇몇 자식(핀란드, 네덜란드)은 아버지 마음을 이해한다. 다른 형제들 때문에 자기들마저 힘들게 됐다며 투덜거린다. 담보를 내놓지 않으면 형제라도 절대 도와줄 수 없다는 말까지 내뱉는다.

어머니는 애가 탈 노릇이다. 지켜보던 이웃들(미국, 영국, IMF OECD 등)도 아버지에게 집안을 풍비박산 낼 작정이 아니라면 그만 고집을 꺾으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아버지가 구석에 몰리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무뚝뚝하고 냉정한 아버지가 호락호락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나이 지긋한 영국 남성이 1번 국도를 자동차로 달리고 있었다. 그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는 "여보, 돌아올 때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방금 라디오를 들으니 1번 국도에 미친 운전자 한 명이 도로를 역주행하고 있다네요!"

남편이 대답하길 "젠장, 한명이 아니야. 역주행하는 놈이 수백명이라고..."

남편은 자신이 홀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유로존 정상이나 글로벌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인데서 이런 우스개 소리가 나왔다면, 독일과 북유럽 몇몇 나라를 빼고는 대부분 쓴웃음을 지었을 게 분명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나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크리스토퍼 심스 미 프린스턴대 교수와 같은 많은 석학들도 유로존 위기를 근본적으로 끝내려면, '유로본드'를 발행해야 하며 독일이 이에 역행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유로본드는 유로존 17개국의 공동 보증으로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신용도가 낮은 국가의 조달금리는 급락하는 반면, 독일처럼 신용이 좋은 나라는 조달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유로본드 발행은 한마디로 남유럽 국가의 방탕했던 과거는 더 이상 문제 삼지 말고, 미래를 위해 북유럽 몇 나라가 손해를 뒤집어쓰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독일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 원칙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희생을 강요받는 게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지난 주말부터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전면적' 구제금융의 전조로 여겨지는 마의 '7%'를 다시 넘나들고 있다. 독일 등 북유럽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강화될 게 뻔하다. 그렇더라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걸까? 억울해 하는 독일에 공감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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