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트럼프의 밑줄

[특파원칼럼] 트럼프의 밑줄

뉴욕=심재현 기자
2025.07.30 04:0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참모들을 대동하고 일본 대표단과 관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책상 위 문서에 일본의 대미투자액이 400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수정돼 있다. /사진=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X(옛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참모들을 대동하고 일본 대표단과 관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책상 위 문서에 일본의 대미투자액이 400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수정돼 있다. /사진=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X(옛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일본의 무역 협상 총괄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협상하는 사진을 지난 22일(현지시간)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사진 속 문서에는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4000억달러를 펜으로 지우고 손글씨로 5000억달러라고 수정한 게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일본의 무역 협상 총괄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협상하는 사진을 지난 22일(현지시간)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사진 속 문서에는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4000억달러를 펜으로 지우고 손글씨로 5000억달러라고 수정한 게 보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일본의 무역협상 과정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장면은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흑백사진 속 협상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서 촬영된 이 사진에는 치열했던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 앞에 뒤섞여 앉은 미국과 일본 관료 14명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뿜어낸 기세가 얼마나 강렬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70분 동안 이어진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협상 제안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딜'을 했다고 한다. 관세율을 1%포인트 낮출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쌀을 더 사라", "미국산 자동차 안전 규제를 완화하라"고 몰아쳤다. 일본 협상팀은 "10명은 있어야 버틸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고 돌이켰다.

많은 이들이 주목했던, 4000억달러를 펜으로 밑줄을 그어 지우고 5000억달러로 고쳐쓴 사진 속 장면도 이런 협상의 결과였다. 당초 1000억달러로 준비했던 일본의 투자계획은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설 때 4000억달러로 올랐다가 결국 5500억달러까지 늘어나서야 마무리됐다. 한시간 남짓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1500억달러를 '수금'해간 셈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보다 앞서 인도네시아와 무역협상을 타결한 뒤 직접 협상했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세세하게 직접 챙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관세와 시장 개방 문제를 두고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하나하나 따지면서 겁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몇이나 됐을까. 일본과의 협상 후일담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직접 협상'이 어떤 의미인지가 새삼 확인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복잡한 구조의 제안에는 부정적이어서 조건이 단순하고 명확할수록 협상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한다. 일본이 자동차 관세를 철폐하거나 인하하는 대신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제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복잡하다고 손을 내젓는 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쌀 수입 확대, 보잉 항공기 구입처럼 딱 떨어지는 이득을 챙겼다. 부동산 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부터 몸에 밴 스타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도 얼마나 이해득실에 철저한 사람인지, 덧붙이면 모든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있었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취임식 때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0년 9·11 테러 당시 투자은행 CEO(최고경영자)였던 러트닉 장관이 장남 카일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늦게 출근했다가 살아남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장남에게는 다른 자식보다 유산을 좀더 물려줄 거죠?"라고 말했다. 관계를 오로지 득실로 따지는 철칙이 관세 정책으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 같은 일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믿음대로 관세 정책이 미국에 득이 될지에 대해선 여전히 갑론을박이지만 이전처럼 미국과 편하게 교역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건 부인하기 힘들어졌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거대한 시장과 관세를 무기로 동맹까지 압박하는 미국의 지금 정책 기류를 되돌리는 건 당분간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당하는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아직 합의를 마치지 못한 우리로선 더 애가 타는 순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8월1일 관세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려면 이제 이틀이 남았다. 이대로면 대미 수출 주력산업인 자동차, 철강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주력산업의 타격은 경제 전반과 민생의 고난으로 이어진다. 트럼프를 넘어 우린 어떤 사진을 남길 것인가. 정부의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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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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