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의 표정은 무거웠다. 6년 전 건국 70주년 열병식 때와 달랐다. 2019년 행사에서 간간이 미소를 머금던 시진핑은 올해 9·3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선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80년 전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지만 마치 새로운 전쟁을 치르는 듯한 분위기였다.
CNN은 "상징적인 장면은 첨단 무기가 아니라 시진핑과 푸틴, 김정은이 나란히 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에 맞서는 연대감을 드러낸 모습"이라고 짚었다. 한때 미국이 낙인 찍었던 '불량국가 클럽'의 정상들이 함께 선 모습은 가히 "서구의 규칙에 반발해 힘의 균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이기로 결심한 비(非)자유주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약해진 글로벌 리더십에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낸 장면"이라 불릴만했다.
트럼프의 대응은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 돌았던 건강이상 사망설과 맞물려 '무력'했다. "미국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푸틴과 김정은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해달라"는 트럼프의 날선 언급에 푸틴은 "미국 대통령의 유머 감각이 부족하진 않다"고 받아쳤다. 크렘린은 이날 또 우크라이나를 공습했고 워싱턴은 만 하루가 지나서야 다시 제재 가능성을 흘리는 데 그쳤다.
중국의 이번 전승절 행사 전부터 외교가에선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글로벌 최강대국이자 경찰국가로 주도했던 국제질서의 끝물이 오늘의 트럼프 정부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전승절 행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이런 평가가 더 굳히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에 쩔쩔매는 건 미국의 동맹뿐 미국과 대척점에 선 국가들은 더이상 트럼프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푸틴은 트럼프를 만난 뒤에도 우크라이나 공습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시진핑은 반년 넘게 이어진 트럼프의 회담 요청을 여전히 방치한다.
미국의 정치적 내분, 서구 동맹의 균열, 트럼프 시대의 고립주의 경향은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이런 균열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 그 틈새로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야심을 키우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국제법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이젠 북한까지 핵무기와 미사일을 앞세워 존재감을 인정받을 판이다.
우리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한미 동맹이 여전히 핵심 축이지만 워싱턴이 흔들리는 순간 동맹의 무게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 삼아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전통적 억지력의 균형이 약화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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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불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차 미국을 방문해 꺼낸 이 말은 맞느냐 틀리냐를 떠나 거대한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도 또다른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북·중·러가 밀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멀고도 가까운 나라 미국을 바라보는 현실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한반도 문제를 두고 미국에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권하며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도 한층 복잡해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전승절 행사 이후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접점을 찾기부터 쉽지 않아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을 만날 이유가 흐려진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북·중·러 연대 움직임을 활용하면서 한국은 배제될 우려가 크다. 우리 외교의 급선무 숙제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외신의 질문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어쩌면 그 외계인 침공이 한발짝 더 가까운 미래로 다가온 상황일지 모르겠다. 시곗바늘은 빨라졌고 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중국과의 거리두기가 다시 모범답안이 아닐 수 있다. 동맹의 마음을 붙잡면서 중국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계인 침공 대책이 시급하다.